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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고창, 오월의 청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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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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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리∼ 꿈결같은 보리피리 소리…추억·그리움으로 빗질

고창군 공음면에 있는 오월의 청보리밭 풍경.

푸른 물결 펼쳐지는 추억의 회전목마
가난과 굶주림 보릿고개 유년의 기억
사박사박 청보리 사잇길 걸으며 감회
내 마음 속 일렁이는 화해·용서의 물결
노을길 유채꽃밭과 대비 몽환의 포토존
행사장 보리 먹거리·투호던지기 재미


고창, 청보리밭. 바람 불면 청보리 물결 넘실거린다. 단번에 느끼는 오월의 환희, 바람이 이랑을 이루고 청 보리 물결 순식간에 시공을 바꾼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나. 그 아롱아롱한 푸른 물결 더 멀리서 추상화처럼 펼쳐지는 추억의 회전목마. 거기에 더 푸른 풀로 흔들리는 유년의 기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미워하던 가난과 그런 굶주림에서도 오월의 푸른 펀더기, 청보리밭에서 터지던 기쁨. 풋 보리가 보리밥으로 익어가던 마음의 세마치장단. 추억의 마음은 언제나 보리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보리 고갯길에는 인간의 따뜻한 시선과 사랑이 있었다. 그때는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인으로 살 수 있었다. 저 청보리 물결은 큰 슬픔도 저어가는 바람의 돛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공연히 청보리밭 둑을 달리면서 장차 돌아올 나의 잃은 것들을 생각했다. 내가 잃은 것은 단지 갈증과 허기였고 그런 배고픔은 슬픔과 지혜를 동시에 주었다. 나는 그때 뼈아프게 체험했다. 목마름과 배고픔은 시나브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몸이 허공과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그 청보리밭이 청보리 물결되어 출렁이면, 나의 마음도 청보리 물결 되어 흘러가는 몰입의 환상에 빠진다. 아 그 보릿고개 길, 살 저미는 시간의 가파른 언덕들. 20만평이나 된다는 청보리밭, 그중 보리밭 사잇길을 시부저기 걷고 있다. 전 국무총리 진의종씨가 1960년대 초반에 고창군의 불모지 야산 구릉을 개간하여 조성하였다. 지금은 그의 아들 진영호씨가 관리한다고 한다. 사람을 가장 편하게 해준다는 청 녹색의 청보리밭. 연간 보리 400t을 생산한다는 대규모 경작지. 그 경관이 빼어나다.

청보리밭 노을길에서 만나는 유채꽃밭.
청보리밭 트릭아트길의 나비 그림.
봄기운이 등뼈를 바로 세운다. 청 보리새싹은 푸른 거울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다 보이면서 나만 보지 못하는 나의 무의식세계를, 청보리 거울을 통해 오늘은 가뭇없이 본다. 녹색은 생명의 색이고, 자유와 해방의 색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청보리는 강물이 되어 내 안으로 더욱 흐른다. 그 신의 따뜻한 손길 같은 오월의 청보리 강물은 내 안에서 화해와 용서의 물결을 이룬다. 이 맘 때쯤 이면 증오는 사랑으로 바뀐다. 그 어처구니없는 자만과 착각으로 잃어버렸던 나의 녹슨 마음이 사랑으로 다시 에너지를 얻는다. 저 드넓은 청보리밭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보이지 않은 것들을 보이게 하는 종교의 구원을 연출한다.

보릿밭 사잇길을 걷던 누군가 보리피리를 분다. 삐리리 삐리리 저 보리피리 소리는 언제나 귀거래사다. 그 고향의 내와 들, 나무와 별, 도깨비와 성황당의 이야기를 모두 악기로 바꾼다. 릴릴릴 리리닐 삐리리 꿈결처럼 너울너울 보리피리소리, 고향의 무대를 만든다. 마구 짓밟혀야 냉구들 같은 삼동을 난다는 청 보리. 본향인 유럽에서 아시아로 오기까지, 1천500년 동안 꽁꽁 언 땅에 뿌리를 내리던 아릿한 유전인자. 깜부기는 청보리의 유골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어온 청보리의 역사. 추억과 회한과 그리움으로 빗질하는 청 보리 물결. 애틋하다. 그 징글징글한 도시의 병동에서 도망한 원시를 꿈꾸는 영원한 도피자. 나는 오늘 자연인이다. 그러자 오월은 또 바람이 되고 청보리는 웨이브를 이룬다. 저 고흐의 그림 같은 색깔을 감성의 화폭에 덧칠한다.

다시 이어지는 보리피리 소리 들으며 사박사박 걷는다. 한번쯤 주저앉아 청보리 물결에 잠겨본다. 배의 흘수선 같은 겹꽃의 청보리밭. 아무도 몰래 건너는 바다처럼 잔파도를 일으킨다. 몸을 세운다. 왜 갑자기 달려가고 싶을까. 청보리밭 어디에선가 만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환상으로 끝났다.

십자로 길이 나타난다. 부활절 날 명화극장에서 ‘왕중왕’이라는 영화를 보았던 느낌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왕중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셨다. 예수의 거룩한 말씀에도 인간들은 그를 믿지 못하고, 그를 끝없이 시험하고 모함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에 올라가 십자가에 매달리신다. 로마병사와 주위의 조롱 속에 ‘“아버지여 제 영혼을 당신 손에 거두소서” 하며 운명하신다. 사흘 후 부활의 날에 예수님이 나타나신다. 그중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은 도마에게 “보고 믿는 것 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도다” 하시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을 몇 간추려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등이다. 그중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보이신 영적인 아픔과 용서, 그리고 피의 대속으로 행한 사랑, 내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오늘 청 보리밭 십자로에서 등골을 타고 흘러내린다. 왠지 이곳은 부활의 땅이고, 우리 모두의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인 영성이 쩌릿하게 느껴진다.

다시 오월의 바람으로 청보리가 흔들리고 물결을 이룬다. 저렇게 청보리 푸른 물결을 타고 그가 어디서 불쑥 나타날 것만 같다. 이 땅은 그만큼 영성적이다. 그럭저럭 ‘님 그리는 길’, 일명 ‘깡통 열차 길’도 걷는다. 푸른 청보리밭과 푸른 하늘은 감동이고, 내 내면에서 그의 말씀이 더욱 들리는 듯하다. 저 더러움으로 물들일 수 없는 땅이 그가 말하는 약속의 땅, 천국인지 모른다.

한반도의 첫 수도 고장이란 꽃 글씨.
노을 길로 접어든다. 노란 유채꽃 밭이 또렷하다. 노란 유채꽃 밭과 푸른 청보리밭은 서로 대비되며 몽환의 포토 존을 만든다. 관광객들의 표정도 맑고 그윽하다. 저런 얼굴은 자연과도,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그 말씀의 얼굴들이다. 나도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오늘은 우리 가슴에서 자라는 청보리 새순이 활짝 피어나는 생명의 날이다. 노란 유채꽃이 노란나비가 되어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이 되는 교감의 날이다. 그 유채꽃을 보는 눈 가장자리로 노란나비들이 곰비임비 얼마나 날아오는지, 그 환시에 나는 수없이 눈을 슴벅거려야 했다. 노을 길은 트릭아트길이기도 하다. 포장길에 그림을 그려놓고 그림위에 사람이 앉아 사진을 찍으면 그 사진이 실제 입체감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삶도 그런 착시가 아닐까.

이제는 마지막 남은 길, 마중 길로 간다. 어디서나 바람에 머리를 출렁이며 청보리들이 군무를 춘다. 아무도 몰래 어린 시절 푸른 꿈이 잠복하던 청보리밭. 눈자위로 질주하는 고향의 실루엣이 삼삼거리는 청보리밭. 아지랑이가 여릿여릿 연보라 빛으로 피어나는 곳. 그곳에는 사립문 여시고 봄의 농악에 귀 기울이는 어버이가 계신다.

백민 기념관도 탐방한다.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농경유물전시관에서 전통 농경 사회의 유물도 관람한다. 고창군이 한반도의 첫 수도였다는 소개가 새삼스럽다. 이제 대강 추스르고 돌아가야 한다. 이제 보리가 건강식품으로 등장했다. 그 보릿고개 길은 유명 가수가 부른 노랫말로 더 울려 퍼지고 있다. 고창군의 옛 이름인 모양현의 ‘모’는 ‘보리’를 뜻하고 ‘양’은 ‘태양’을 의미한다. 고창이 예전부터 보리의 고장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행사장에는 보리개떡, 보리순 강정, 보리피리를 만들기도 한다. 토속행사로 널뛰기, 외줄타기, 투호던지기도 있다. 그러구러 버스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보리밭가에서 곰방대 물고 조선낫이 우는 소리를 듣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하다. 저 청보리 밭 언덕처럼 등 굽은 아버지의 지게가 황토걸음으로 부황난 보릿고개를 넘는 것이 자꾸 오버랩된다.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주차장-보리밭 사잇길-님그리는 길-노을길-마중길-주차장 ▶문의: 공음면 관광 학원농원 (063)560-2522 ▶내비 주소 :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 농장길 158 - 6 ▶주위 볼거리 : 고창읍성, 고인돌박물관, 미당시문학관, 선운산도립공원, 문수사, 무장관아와 읍성, 운곡 람사르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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