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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문화팀장 |
얼마 전 지인을 따라 영주에 있는 '여우생태관찰원'에 갔습니다. 아이에게 붉은 여우를 보여주는 '동물원 체험'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향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막상 도착해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붉은 여우를 본 뒤의 마음은 먹먹했습니다.
이곳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이 운영하는 멸종위기종인 붉은 여우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증식하고 복원하는 시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 동식물에 대한 종(種)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지리산에서는 반달가슴곰, 설악산과 월악산에서는 산양, 덕유산에서는 멸종위기 식물, 그리고 소백산 자락에서는 붉은 여우(토종 여우) 종복원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몰랐던 얘기였습니다.
붉은 여우는 현재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라고 했습니다.
전문해설사에 따르면 붉은 여우가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종이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입니다. 바로 쥐 잡기 운동과 목도리입니다. 1970년대 식량자급률이 부족한 시대에 곡식을 축내는 쥐잡기가 전 국민운동으로 전개되면서 쥐를 주된 먹잇감으로 삼는 여우도 쥐약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과거 부와 부러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여우목도리 선호 현상도 여우를 멸종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우생태관찰원은 멸종위기종인 붉은 여우가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적응 훈련을 도와준 뒤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GPS기기가 탑재된 추적장치를 목에 건 뒤 야생으로 보내기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그 장소로 직접 찾아가 여우의 상태를 체크합니다. 덫에 걸리거나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여우생태관찰원은 사고로 다치거나, 아프거나, 야생으로 보낼 수 없다고 판단되는 여우들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일도 도맡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생태관찰원에서 만난 여우 중에는 다리를 절룩이는 경우가 제법 많았습니다. 로드킬 직전까지 몰렸던 사고 상흔이라고 했습니다. 로드킬을 당할 뻔한 여우가 심리적 불안을 겪으며 관찰원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종다양성을 위한 국가적인 생태계 복원 노력으로 힘들게 증식한 멸종위기 동물이 로드킬로 희생되고 부상을 입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로드킬은 크게 늘고 있습니다. 2023년 전국 도로에서 발생한 로드킬은 7만9천278건으로 8만건에 육박합니다. 2019년 2만1천397건에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만5천107건으로 줄었다가 2021년 3만7천261건→2022년 6만3천989건→2023년 7만9천278건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도로관리청에서 로드킬 정보시스템 활용을 통한 신고가 정착되면서 정보 수집률이 향상된 것이 로드킬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지만 희생된 동물의 수 앞에 숙연함이 듭니다.
여우는 사람을 기피하는 성향이 강해 어두울 때 이동하다 보니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그동안 산길 도로 주행 시 '야생동물 출몰지역 주의'라는 표지판을 볼 때 인간만을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단순한 알림 문구가 아니라 동물의 안타까운 희생을 막고자 하는 절박한 호소였습니다. '야생동물 출몰 지역 주의'라는 표지판을 보면 이제는 속도를 줄이겠습니다.
박주희 문화팀장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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