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포제련소 모기업인 영풍과 고려아연 간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추석 명절 전부터 본격적으로 불 붙은 영풍그룹 내 지주사와 핵심 계열사 간 힘겨루기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까지 전선에 뛰어들면서 양측 갈등은 악화일로 상황이다.
18일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MBK파트너스 측은 "이번 주식 매수는 최대 주주의 경영권 강화 차원일 뿐 일각에서 주장하는 적대적 M&A는 어불성설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1주당 66만 원에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를 개시한 뒤 고려아연 측과 울산시 등이 연합해 '약탈적 투기'라며 크게 반발하자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앞서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가 경영권을 취득할 경우 국가기간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이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업장이 있는 울산시와 울산시의회도 이번 공개매수를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간주, 고려아연 편에 섰다.
실제 공개매수가 성공하면 고려아연 경영은 MBK파트너스가 주도할 전망이다. MBK파트너스는 주주 간 계약을 통해 지분 일부에 대한 콜옵션을 부여받기로 했다. 양측이 고려아연의 재적 이사 과반수를 선임하게 되면 MBK 파트너스는 콜옵션을 행사해 영풍 측보다 고려아연 주식을 1주 더 갖게 된다. 더불어 영풍 측보다 이사를 1명 더 선임할 수 있고,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지명권도 MBK파트너스가 갖는다.
MBK파트너스에 따르면 현재 영풍(장형진 고문 일가 포함)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3.1%다. 최윤범 회장 일가(15.6%)보다 2배 이상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과 고려아연의 모태는 영풍기업사다.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두 명의 창업주가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공동경영을 이어오다 1974년 고려아연 창립 후 최씨 가문이 고려아연을, 장씨 가문은 영풍과 전자 계열사 경영을 맡아왔다.
비철금속분야 글로벌 1위 업체인 고려아연은 아연은 물론 금·은·동 등을 제련하는 기업이다. 지난해에만 매출 9조7천45억 원, 영업이익 6천599억 원의 실적을 냈다.
반면 장씨 일가가 이끄는 영풍과 영풍전자, 인터플렉스, 코리아써키트는 고려아연에 비해 몸집이 작은 편이다.
양 가문 간 갈등은 2022년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경영을 맡으면서 불거졌다. 2차전지 소재 및 신재생에너지 등 사업확장 과정에서 장씨 일가와 균열이 생긴 것.
특히 고려아연이 지난해 현대차그룹 해외 계열사인 HMG글로벌을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제3자 유상증자를 하면 장씨 가문 지분율이 줄고, 최 회장에 대한 우호 지분율은 늘어나서다. 본격적인 지분 확보 대결이 시작된 셈이다.
지난 3월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선 배당안과 정관 변경안을 놓고 양측이 표 대결을 벌였다. 영풍 측은 HMG글로벌 유상증자 신주발행 무효 소송에 들어갔다.
이에 고려아연은 영풍과 원료 공동구매 종료를 선언한 뒤 지난 6월 영풍이 관리하던 서린상사 경영권까지 확보했다.
서린상사는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1984년 비철금속 수출을 위해 설립했다.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와 호주 자회사 썬메탈, 영풍의 석포제련소가 생산하는 비철금속의 수출·판매·물류를 전담해왔다. 최대 주주는 고려아연이었지만 경영은 영풍이 맡아 왔다.
고려아연은 지난 7월 더부살이도 정리했다.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 있던 본사를 종로구 그랑서울 빌딩으로 이전했다.
이후 영풍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합심해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섰다. 또한 영풍은 지난 13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 대해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배임 의혹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관여 의혹 △이그니오 고가매수 의혹 등을 제기하며 법원에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을 신청했다.
박종진기자 pjj@yeongnam.com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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