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무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상임대표·대구 화동초등 교사) |
방학하는 날에는 자원순환교실에 씻고 펴서 모아 둔 우유팩을 들고 화원행정복지센터로 가서 화장지로 바꾸어 두었다. 우유팩을 바꾼 화장지만으로도 학교에서 1년 내내 쓸 화장지가 나온다. 아이들이 물통을 들고 다니고, 적어도 학교에서는 생수를 구매하지 않고, 물티슈도 쓰지 않으니 한 학기를 모아도 분리배출한 플라스틱이 아주 적다. 방학 전 토요일에는 고산골과 욱수천의 공룡화석, 가톨릭대학교의 스트로마톨라이트로 이진국 지질 박사와 함께 화석탐사를 다녀왔다. 아이들은 화석보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더 좋아했지만, 공룡 발자국 화석을 따라 네발로 걸어보며 중생대 백악기를 체험했다.
방학 첫 토요일,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도시숲 생태탐사에 과학환경동아리 회원들과 참여했다. 식구들과 휴가를 가서 다섯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앞산 달비골에 도착할 때쯤 비가 쏟아진다. 급하게 청소년수련관 안에 있는 정자에서 이론 공부부터 시작했다. 오늘 안내는 도원고 교장으로 있는 박대호 박사이다. 초등학생들을 만난다고 많이 준비해 오셨다. 전문가답게 아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덥고 비오고 습한 날씨여서 아이들도 자기 짐을 챙기랴 배우랴 애를 쓴다. 세상에 각 분야 박사들이 모여 진행하는 이런 고급 생태탐사가 또 있을까?
생물을 분류하면서 식물을 다시 정의하고 분류하고, 직접 관찰하면서 꼼꼼하게 공부했다. 풀과 나무를 나누고, 홑잎과 겹잎, 잎 전체 모양이 바늘형 침형 난형 심장형 원형을 찾고, 잎맥이 두갈래맥인지 나란히맥인지 그물맥인지, 잎자루는 어떻게 나 있는지, 잎끝과 잎밑 잎 가장자리 모양을 살펴보고, 줄기의 수피는 어떤지, 줄기의 단면은 둥근지 네모인지 세모인지, 잎차례는 어긋나기 마주나기 돌려나기 십자마주나기 겹쳐나기인지 관찰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see나 look에 그치지 말고 watch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가 딱 맞다. 그래야 관찰할 수 있다. 교육청은 질문있는 교육을 하라고 하지만 자연이든 세상이든 관찰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아는데 무슨 질문이 있을까? 그러니 가능하면 현장으로 데리고 가고, 관심이 생기고 관찰하게 되어야 질문이 생겨나는 이치를 놓치고 질문을 하라고 하면 질문이 나올 리가 없다.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계요등 잎을 비비면 닭 오줌 냄새가 날 거라고 아무리 유도를 해도, 아이들은 계속 통닭 단무지 냄새라고 했다. 아무래도 식물 이름을 요즘 아이들에게 맞게 다시 지어야겠다고 말했다. 콩과식물 고삼을 보고는 쓰디쓴 1박2일의 고삼차와 고3들의 고생을 생각했다. 나무 공부를 하는데 눈앞에 여기저기 버섯이다. 독버섯이냐 아니냐는 궁금증에서 시작하다가 이름이 재미있는 여우꽃각시버섯, 은빛쓴맛그물버섯, 회색귀신광대버섯, 향기젓버섯 등 균류 공부가 되었다. 나무보다 더 어렵다. 마칠 때는 박사들이 서로 어린 시절 자연 놀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강아지풀로 수염 만들기, 손에 감싸고 쪼였다 푸는 마술, 풀잎을 반으로 잘라 풀피리 불기를 했다. 자연에서 놀 거리는 어마어마하다. 페스탈로치는 자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라. 그러면 자연이 가르칠 것이라고 했다.
다음 주에는 학교 옆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가는 천내천에 가서 채병수 어류 박사와 함께 천내천 민물고기를 탐사한다. 제대로 조사하면 아마도 첫 조사가 될 것이다. 나도 기대가 크다. 8월에는 천체망원경 실습을 하고 개학하면 직접 공개천체관측 안내를 하게 할 것이다. 지난 하지 때, 뙤약볕에서 태양흑점 관측을 할 때 아이들이 유치원 아이들과 급식 봉사를 하는 할머니들에게까지 나보다 더 열심히 안내하고 설명을 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학하면 달서구 수밭골 안쪽에 사는 늦반딧불이를 탐사하려고 한다.
교육청에서 받은 과학환경동아리 예산을 아껴가면서 더 많은 아이를 더 자주 자연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이제 교사 노릇도 겨우 3학기가 남았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다가 정년퇴직을 하면 학교를 찾아가서 아이들을 자연으로 안내하는 일을 하고 싶다. 특히 별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마지막 차를 아스트로카로 만들기로 했다. 미리 퇴임한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대구지부장 선배와 같이 시골 학교를 찾아가서 낮에는 태양, 밤에는 별과 달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하려고 한다. 지부장 선배는 지금 몽골에서 여행자들에게 몽골의 밤하늘을 안내하며 천문을 연구하고 있다.
나는 방학을 하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꼼꼼하게 읽고 있다. 또 추천받은 환경작가들의 책을 쌓아두고 있다. 좋은 연수 기회가 어디든 있으면 최선을 다해 참가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5년간 180회차까지 이어온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의 화요공부방을 통해 전국 곳곳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생태전환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전문가를 만나고 있다. 방학 첫날 대구교육팔공산수련원 청람관에서 2박3일 워크숍을 하는 삼영초 교사들에게 생태전환교육 사례를 소개했다. 녹색학습원 환경연수에서 환경글쓰기 강의를 하고 틈나는 대로 다른 강의를 들었다. 나는 말년 교사의 방학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여름방학이지만 교사들은 누구나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뜨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임성무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상임대표·대구 화동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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