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우사인 볼트(왼쪽 둘째)가 트랙을 질주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
이재호 지음/어바웃어북/408쪽/2만2천원 |
올림픽 등 스포츠 경기를 보면 결국 주목받는 건 승자다. 승리 여부를 떠나 선수가 저마다 어떤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가끔 누군가에 의해 작게나마 조명되긴 하지만.
이 책의 저자도 해부학자가 된 이후 올림픽을 보면서 즐거움보다는 아쉬움, 감동보다는 아픔을 느꼈다. 특히 이들이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위해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쏟은 노력이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물거품이 되는 순간을 보게 될 때 그랬다.
이 책은 아픔의 원인을 찾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가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올림픽의 기록이다. 해부학자인 저자는 알리의 주먹, 코마네치의 발목, 조던의 무릎, 펠프스의 허파, 볼트의 허벅지 근육, 태극 궁사들의 입술 등 선수들의 몸에 주목한다.
저자는 하계 올림픽 중에서 28개 종목을 선별해 스포츠에 담긴 인체의 속성을 해부학 언어로 풀어낸다. 책은 1964년 로마 올림픽 복싱 종목에 미국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거머쥔 무하마드 알리와 복싱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복싱' 편에선 폭력과 스포츠의 경계를 나누는 '사각(四角)의 링'과 그 공간이 '사각(死角)의 링'이 된 사연을 '펀치 드링크'라 불리는 만성외상성뇌병증(CTE)을 통해 의학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한다.
저자는 국제복싱연맹이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헤드기어 착용을 의무화했다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다시 헤드기어를 벗도록 규정을 바꾼 조치에 대해 의학적 관점에서 지적하기도 한다.
책에선 마이크 타이슨의 핵주먹을 통해 해부학에서 '복서의 날개뼈'라 불리는 앞톱니근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타격의 메커니즘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해부학자의 눈에는 벌침처럼 날카로운 스트레이트의 원천이 되는 알리의 유연한 날개뼈, 즉 앞톱니근이야말로 나비의 우아한 날갯짓 그 자체"라고 했다.
'유도' 편에선 200가지 넘는 기술 중 외십자조르기가 목동맥삼각에 위해를 끼쳐 산소 부족 상태를 초래해 뇌 손상에 이르는 과정을 짚는다.
'육상' 편에선 우리 몸의 근육조직을 이루는 속근과 지근이 단거리와 장거리 경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본다. 이와 함께 속근과 지근의 특성상 우리 몸의 근육이 순발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갖추는 게 쉽지 않은 이유도 살핀다.
축구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회전킥(스핀킥)과 무회전킥의 원리에 대해선 마그누스 효과, 카르만 소용돌이 등 물리학 이론으로 풀어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무회전킥이 어떻게 종아리근육에서 비롯되는지도 해부도를 바탕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최근 스포츠계의 이슈인 기술 도핑 및 스테로이드 오남용 문제를 다루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를 통해 스포츠가 가진 사회적 의미도 살펴본다. 2009년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독일의 파울 비더만이 입은 전신수영복은 기술 도핑 문제를 수면 위에 올린 대표적인 사례다. 사이클이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으로 올림픽에서 퇴출 위기를 겪었던 사연, 체지방 감소를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로 REDs 증후군에 시달리는 어린 체조 선수들의 인권 문제 등도 짚는다.
저자는 계명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해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5년부터 계명대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저서인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과학창의재단)의 '우수과학도서'와 문화체육관광부(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세종도서'에 선정됐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최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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