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야생을 지키는 일들

  •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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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7-05   |  발행일 2022-07-05 제22면   |  수정 2022-07-05 06:52
인간의 무차별적인 개발 통한

기후변화로 멸종 위험의 상태

북극바다의 유니콘 일각고래

생물유전자 보존 및 저장시설

현대판 노아의 방주 '시드볼트'

야생의 씨앗 지키는 노력해야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야생을 지키는 일들
이하석(시인)

-일각고래

수심 1천800m 빛 없는 곳에서 유영한다. 소리만으로 상황과 사물을 판단한다. 박쥐같이 초음파를 쓴다. 인간들이 접근 않는 숨겨진 곳에서 생존하는 신비한 동물. 일각고래. 수컷에 나선 모양의 엄니(상아)가 앞으로 돌출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바다의 유니콘(일각수)이라 불린다. 북극해에 7만~8만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각고래가 위험에 처해지고 있다는 보도가 최근 떴다. 그래, 역시 인간들 때문이다. 덴마크의 코펜하겐대와 그린란드천연자원연구소 연구팀은 "일각고래가 20~30㎞ 떨어져도 선박과 물리 탐사용 탄성파 발신기(에어건)의 소음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활동에 방해를 받고,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했다. 이를 밝힌 논문은 영국 왕립학회가 발간하는 '바이올로지 레터스' 최근호에 실렸다.

그동안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숨겨졌던 북극해가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인간들이 기웃거리며 활동이 잦아져 그 소음이 북극해의 잠을 깨운 것이다. 지질조사니, 탐사니, 해저 광물 채취를 위한 발파, 거기다 항구를 개발하면서 배들이 들락거리는 것이다. 그 영향은 즉각 고래들을 비롯한 북극해 생물들에게 끼친다.

고래들의 귀는 밝다. 인간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멀리서 나는 미세한 선박 소음도 반응하며, 다른 소리와 구별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접근이 늘면 고래들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생리적인 변화는 물론, 건강에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얼음으로 덮인 북극의 바다. 그 기후적 악조건으로 인해 그동안 인간은 접근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신비의 영역으로 보존되어왔다. 그러다가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가 이런 구도를 망가뜨린 것이다. 신비의 영역이 호기심 많은 인간들에 들키면서 그 속 생물들의 터전이 간섭받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일각고래들이 가졌던 신비한 바다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삼 일본 NHK위성방송이 1995년부터 방송하기 시작한 '20세기 생명의 묵시록'이 떠오른다. 이 다큐멘터리는 20세기에 멸종된 동물들에 대한 애달픈 사연과 끓는 분노의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이 시기에 절멸한 동물은 2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를 멸종에 이르게 한 근본 원인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다. 특히 탐사와 개발로 인한 무차별 남획으로 멸종에 이른 동물들이 많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간해오고 있는 '세계 가축 다양성 감시 목록'은, 전 세계에서 길러지고 있는 가축 수천 종이 멸종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경고한다. 가축의 종들이 매주 2종씩 절종하고 있으며, 전 세계 6천500여 종의 포유류와 조류 가운데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도 했다. 우리는 지금 멸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한 식구로 살아왔던 생물들이 이렇듯 멸종하여 자취를 감추면 남은 식구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각고래. 이 신비한 동물마저 멸종의 시대를 힘겹게 버티는구나 라고 안타까워 한다. 가까운 타이름의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우리들의 귀와 비교해, 멀리서도 잘 들리는 일각고래에게 점점 더 가깝게 다가가는 '우리들의 소리'가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종자보존

종자 보존 관련 보도가 는다. 그런 가운데 봉화의 '시드볼트'가 관심을 모은다.

'시드볼트'는 씨앗인 시드(Seed)와 금고인 볼트(Vault)의 합성어다. 종자 금고다. 씨앗 은행(Seed bank) 또는 종자 은행이라고도 한다. 산불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비롯해 전쟁과 기후 변화 등으로 자칫 식물 생태계가 교란되고, 결국 멸종에 이르게 되는 것에 대비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유전자 보존 및 저장 시설이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세계에는 씨앗 은행들이 더러 있다. 영국 런던의 밀레니엄 종자 은행 파트너십,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빌로프 전 러시아 식물 유전자원연구소 등과 더불어 한국 인천의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야생식물종자은행과 경북 봉화군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종자영구보존시설 등이 그것이다. 특히 봉화의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볼트와 함께 전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인 종자 영구 보존 시설로 꼽힌다.

백두대간 시드볼트에는 국내 종자 관련 기관과 개인 등으로부터 수탁받은 수만 점의 종자들을 비롯, 국내외 야생 식물 종자 13만8천여 점을 저장하고 있다. 농작물 종자뿐만 아니라 모든 야생식물 종자를 밀봉한 블랙박스에 보관 저장하고 있다.

"시드볼트가 제 본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유지되는 것,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종자들이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어쩌면 이 역설적인 역할 때문에 시드볼트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투명합니다. 그저 여기, 이곳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의 온갖 야생식물 종자가 불안전한 세상을 피해 안전한 세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시드볼트에 저장되는 종자는 어쩌면 우리 세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100년간 우리는 다 함께 '힘을 합쳐' 이 지구를 아프고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시드볼트는 이런 현실을 만들어 낸 우리 세대의 책임인 동시에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일지도 모릅니다."

'시드볼트: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저자 이상용, 이하얀 외, 출판 시월)이 밝힌 봉화 시드볼트 참여자들의 말이다. 그래, 멸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도 이런 귀중한 '씨앗'들을 같이 저장하고 지키는 창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하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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