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도 대장봉에서 바라본 고군산 군도 풍경. |
새만금은 신조어다. 오래전부터 옥토(玉土)로 유명한 만경 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이 일궈 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군산시에서 부안까지 길이 33.9km, 우리말로 팔십오리. 바닥 폭 평균 290m, 평균 높이 36m. 세계 최장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주다치 방조제보다 1.4㎞ 더 길다. 새만금 방조제로 서울시 3분의 2 크기의 뭍이 생겨나고 거대 담수호가 탄생했다. 이를테면 천지개벽한 셈이다.
대장도에 있는 천년나무 조형물. |
새만금 전시관 전망대에서 사방을 살핀다. 환몽의 뷰 포인트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방조제, 내수면 호수와 서해 바다, 올망졸망한 섬들. 이건 판타지다. 간간이 수면에 반사되는 흐릿한 햇무리가 내 망막에 뼈를 묻는다. 바다와 하늘이 구분되지 않는 해무 저 멀리서 우리의 그리움이 시작되는지 모른다.
이렇게 메타버스 같은 환상풍경에 오금까지 짜릿하다. 마치 뿅망치에 얻어맞아 정신이 얼얼한 것처럼. 이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어느새 감쪽같이 안개가 밀려왔다. 그렇게나 갑자기. 안개는 바다를 지우고, 방조제를 지우고, 너도 지우고 나는 홀로 된다. 그나마 하얀 흐름으로 안개 속을 떠다니던 공상의 은빛 물고기떼가 나타나고 사라지고 반복할 때, 나는 우리 존재가 얼마나 잠깐인가를 알고 허망함에 전신이 부르르 떨린다.
그렇게 안개는 내 감정에 스며들어 추억을 소환한다. 청년시절 어느 여름 금호강가에서 텐트 생활할 때, 새벽이면 언제나 안개가 자욱했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그 신비한 현상에 빠져 우리는 안개가 물러갈 때까지 정훈희의 안개를 불렀다. 안개를 먹고 자라는 버드나무 사이로 그 정훈희가 꼭 나타날 것만 같아, 그렇게 목이 아프도록 불렀다. 안개는 감정의 심포니였다. 그러다 불시에 안개가 사라지면 우리는 돌아가는 짐을 주섬주섬 싸야만 했다. 안개는 아릿한 추억의 백미러다.
그러나 이제 출발해야 한다. 가요, 고군산 군도로. OK, 빠르게 go~. 차는 안개 낀 방조제 길을 달린다. 처음 방조제를 만들 때 유속으로 마지막 물막이를 할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큰 돌을 망태기에 담아, 즉 돌망태 공법으로 물막이를 성공시켰다. 이건 천수만의 물막이인 정주영 공법, 즉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물막이를 성공한 것과 더불어 세계를 놀라게 한 유명한 공법이다. 우리가 지나는 방조제 어디쯤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덧 야미도를 지나고 신시도를 통과한다. 안개는 말끔히 사라졌다. 자욱했던 그 안개 다 어디로 갔을까. 장구와 술잔을 놓고 춤을 추는 무당을 닮은 섬, 무녀도도 지나 장자도 주차장에 주차한다.
여기서 대장도 대장봉까지는 걷기로 한다. 대장교를 건너자 천년나무 포토존이 등장한다. 천년나무 아래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간 남편의 금의환향을 기도하던 아녀자의 전설이 있다. 남편과 자식을 위해 정화수 떠 놓고 나무·바위·달과 별에 기도하고 치성하던 우리 어머니. 그 무한 사랑의 모성애. 꺼지지 않는 가슴의 모닥불이다. 대장봉은 바위산이다. 길을 오르는데 어화대 신당이 있다. 어부들이 만선과 안전을 기도드리는 곳이다.
새만금 방조제 '33.9㎞' 세계 최장
차로 자욱한 안개길 뚫고 장자도 당도
대장봉에서 걸어올라 '고군산' 뷰 조망
섬과 섬 이어주는 다리도 아름다워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선유도 바다
망주봉 자락길 지나 만난 '오룡묘'
과거 뱃길안전·교역 성공 기원한 곳
금강 하류 가창오리떼 군무 장관
◆대장봉 정상
여기부터 오르막이 가팔라 쉬엄쉬엄 오른다. 거의 20분 만에 대장봉 정상(해발 142m) 전망대에 도착한다. 사방이 탁 트인 파노라마 뷰가 황홀하다. 날씨는 흐렸지만 구름 사이로 빛 내림이 절경을 만든다. 섬과 섬 사이 16개 유인도와 47개 무인도가 섬의 군락을 이루어 마치 여행자들의 로망인 샹그릴라처럼 꿈같은 비경을 보여준다.
고군산은 고려 때 수군 기지를 두었고, 섬이 많이 모여 산처럼 보인다고 '군산진(群山鎭)' 이라 불렀다. 조선 세종 때 수군 기지가 육지로 가서 군산이 되고, 이곳은 고군산이 되었다. 예전에는 군산에서 정기여객선을 타고 선유도에 하선 트레킹을 하였는데, 지금은 새만금에서 야미도·신시도·무녀도·장자도·대장도·선유도까지 차가 다닌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우리의 힘은 어디까지인가.
섬과 섬을 잇는 다리도 아름답다. 선유도의 망주봉과 황경도 방축, 명도와 말도, 그리고 해무 옅은 바다 풍경은 속절없이 한 폭의 동양화다. 내 감정에 이렇게 닭살이 돋는 환상의 여행지는 처음인 것 같다. 몇 차례나 전망대를 돌고 돈다. 신선들이 노닐던 곳, 고군산군도. 환호와 탄식이 엇갈리는 그 몽환의 풍경에 아연하였다.
대장봉 전망대에서 뒷길로 내려온다. 그리고 선유도로 이동한다. 선유도 해수욕장 하얀 백사장 허구리 트레킹 로드를 걷는다.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선유도 바다와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눈에 담으며 걷는 시간은 순간순간이 모두 영원이다. 바다 위 데크 로드로 솔섬에 갔다 돌아 나온다. 정말 멋진 길이다.
옛적 젊은 부부가 천년왕국의 새 지도자를 기다리다 바위봉이 되었다는 망주봉도 천혜의 비경이다. 망주봉 자락길로 신기리 오룡묘에 간다. 고려 인종 1년(1123) 송나라 사신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오룡묘가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선유도 망주봉 작은 봉우리 남쪽에 위치한다'라고 적혀있다.
선유도에 있는 오룡묘. |
이곳 오룡묘는 풍어보다 먼 외국으로의 뱃길 안전과 무역의 성공을 기원하는 곳이었다. 이를테면 교역선의 영험한 기도처였다. 고려 시대에 강진에서 청기와를 싣고 개경으로 가던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나 오룡묘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을 때, 오룡묘 용신이 꿈에 나타나 청기와 다섯 장을 오룡묘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풍랑이 가라 앉을 것이라 했다. 그대로 하자 풍랑이 그쳐 항해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때 청기와는 8·15 광복 이후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참 애석하다. 여기저기 볼거리가 남았지만 돌아 나온다.
정유재란 때 명량 해전에서 대승한 이순신 함대가 회군하여 머문 수군 기지가 있었던 곳, 숱한 전설과 역사의 맥박이 뛰는 곳, 신선이 사랑한 서해의 보석 단지, 고군산 군도. 이쯤에서 선유도를 출발한다. 시간의 물결을 타고 차는 달린다. 한국의 하롱베이 고군산 군도, 장자도·무녀도의 박버금물 해수욕장, 징장볼 해수욕장, 질망봉, 꽃지 1길·2길·3길·4길, 군장의 숨결을 노래한 하울의 섬, 우리는 그렇게 그 섬들의 먼 경치를 바라보며 새만금으로 나왔다.
조선 시대 전라 감사 이서구(1754~1825)는 새만금 일대가 앞으로 뭍으로 변한다고 예언했다. 그는 '수저(水低) 30장(丈)이요, 지고(地高) 30장(丈)이라'고 했다. 군산과 변산의 앞바다가 30장(약 90m) 깊이로 해수가 빠지고, 해저의 땅이 30장(丈) 위로 솟구친다는 뜻이다. 호남인들은 새만금 방조제로 바다가 육지로 변하게 되자 이서구의 예언이 틀니처럼 맞았다고 놀라워한다.
멀리 가창오리 군무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는 금강 하류. |
이제 서천의 금강 하류로 달린다. 임인년 1월 해질녘에 펼치는 가창오리 군무를 보러. 화양면 완포리 금강 하류 둑방에는 가창오리 군무를 보기 위해 탐사자들이 여럿 도착해 있었다. 강바람 불면 허연 갈대가 서걱이면서 겨울 해거름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더욱 스산하게 하였다.
그 넓은 금강에 가창오리 무리가 엄청난 검은 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곳 해설사는 약 40만 마리의 가창오리떼라고 하였다. 그렇게 기다리는데 가창오리떼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장관이었다. 회색빛 허공에 어마어마한 새떼가 펼치는 군무는 호흡마저 멈추게 하는 기적 같은 현상이었다. 여기저기서 셔터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
글·사진=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문의 : 고군산군도 탐방지원센터 (063)465-5186
☞내비주소 : 전북 부안군 변산면 새만금로 6 (새만금 전시관)
☞트레킹 코스 : 새만금 전시관 - 장자도 - 대장도 대장봉- 선유도 - 금강 하류
☞인근 볼거리 : 은파호수공원, 남내마을, 깐치멀 마을, 호남관세 박물관, 채만식 문학관, 조류 관찰소, 금강호 관광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해망굴, 금강호 시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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