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제공하는 천연 산물은 지혜롭고 과학적이며 인류의 건강을 위해 최고의 산물을 공급하려는 자연의 진지한 배려를 읽을 수가 있다. |
인류역사의 초기에 사람들은 자연의 위대한 능력 앞에 불가불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의식주를 위한 자연의 위대한 생산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의 어쩔 수 없는 위협 앞에서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연의 법칙을 존중했으며 심지어 경외하기까지 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과 인류문명의 진화는 자연의 법칙에 변화를 가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더 나아가서는 자연의 법칙에 저항할 수도 있다는 자만심을 갖기에 충분하였다. 즉, 자연이 인류의 건강을 위한 최적의 생산법칙에 따라 공급하는 먹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런 흐름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인위적으로 뭔가를 보충하거나 제거해야 할 만큼 개량이나 개발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근원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식품이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자연이 제공하는 산물을 천연 그대로나 통째로 섭취하는 것은 마치 미개하고 원시적인 식생으로 인식돼 버렸다. 자연이 제공한 산물에 뭔가 더욱 다양한 과정을 거쳐 가공 또는 요리한 것일수록 더욱 고급스럽고 문화적인 식품 섭취의 행위로 점점 인식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사과를 씻어서 그냥 껍질째 먹는다는 걸 마치 미개한 종족이 섭취하던 원시적인 식문화로 인식할 수도 있다. 껍질을 깎아서 먹거나 즙을 짜서 가공한 사과즙을 우아한 컵에 담아서 마시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개화된 문화인의 선진적 식문화인 것처럼 이해될 수도 있다. 과연 저것은 원시적인 것이며 이것은 '문화적'인 것일까?
통산물이 나를 살린다
자연은 말이 없다. 그래서 과학적이고 논리적 설명이 결여된 그 자연품이 얼핏 보면 뭔가 부족하고 불완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밀히 관찰해보고 분석해 볼수록 얼마나 지혜롭고 과학적이며 인류의 건강을 위해 최고의 산물을 공급하려는 자연의 진지한 배려를 읽을 수가 있다. 겉 포장재를 제거하고 속 알맹이를 먹는 것이 몸에 좋은 산물이면 포장재가 쉽게 분리되도록 포장해 제공하고 있다.
반면에 껍질과 같이 통째로 먹는 것이 우리 몸에 꼭 맞는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겉껍질과 속살이 분리되기가 아주 어렵도록 만들어 놓았다. 전자로는 귤·오렌지·바나나·땅콩·두리안 등이 있을 수 있고, 후자로는 사과·배·감·복숭아·토마토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사과의 겉껍질에는 여러 가지 유용한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함축돼 있다. 그래서 통사과로 먹을 경우 껍질을 깎고 먹는 사과보다 섬유소, 비타민 E·K, 엽산, 루테인, 칼슘, 철 성분 등이 2~4배 정도 더 포함돼 있다고 한다. 최근 의학저널에서는 사과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혈관내피 기능을 개선함으로써 고혈압·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 질환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주로 사과의 껍질에 함유돼 있다.
아시아인의 주식, 쌀은 어떤가
벼의 겉껍질인 왕겨를 제거하고 나면 통곡물인 현미가 나오는데 이것을 열 번 또는 열두 번 깎아서 현미의 쌀눈과 쌀겨를 제거한 새하얀 속 쌀이 바로 '백미'다.
이 백미 밥에는 탄수화물이 많아서 먹기에 달고 부드러워서 좋다. 그러나 중요한 영양성분이 현미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현미에는 특히 식이섬유와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하다. 식이섬유는 백미보다 4.5배 정도 더 많으며 티아민 6배, 니아신 4배, 망간이 2배, 마그네슘 4배, 철분 2배, 비타민 B6 50%, 아연이 약 40%가량 더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동맥경화증을 막아주는 비타민 E가 백미보다 약 2배 많으며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베타시토스테롤 성분은 백미보다 5배가량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혈행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폴리코사놀 성분도 백미보다 5배가량 많으며 암세포 분화를 억제하는 물질로 알려진 피틴산도 백미보다 3배 가까이 많다고 한다. 백미보다 당분이 적어 밥맛이 떨어지고 식이섬유가 많아 식감이 떨어진다는 점만 감안하면 현미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밀은 어떠한가
쌀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인류는 밀을 그대로 갈아 통밀 가루를 원료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밀기울은 제거하고 밀알의 속만 정확히 파내 새하얀 백밀 가루를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백밀가루는 탄수화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통밀에서 껍질 부분인 밀기울을 제거하게 되면 수용성 비타민, 비타민A, 레티놀, 베타카로틴 등의 성분은 아예 없어져 버린다. 뿐만 아니라 단백질, 지방, 인, 철, 마그네슘, 칼륨, 나트륨, 티아민, 리보플라빈 등의 성분 비중도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통산물 섭취는 지구의 식량문제를 넉넉히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현재와 같이 백미 밥이 아닌 통곡물 현미식으로 먹는다면 어떠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까? 한국의 경우에 대부분의 백미는 도정률 90.4%를 자랑하는 때깔 좋은 '12분도미'다. 쌀겨로 제거되는 9.6%가 한국만 해도 연간 약 50만t이 식량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전 세계 연간 쌀 생산량은 약 5억1천200만t이다. 현미로 생산한다면 5억6천630만t 이상 생산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벼를 현미로 도정하여 먹는다면 설비투자 및 에너지 절감 효과는 물론 연간 5천400만t 이상의 현미를 잉여분으로 더 얻을 수 있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7억명 가까이 되는 인구가 하루 세끼의 양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기아상태에 놓여 있다. 한국의 1인당 연간 백미 쌀 평균 소비량은 57㎏이다. 넉넉히 계산해 1인당 연간 75㎏의 현미를 먹는다고 해도 나머지 현미 5천400만t을 갖고 7억명 이상의 인구에게 1년간 충분히 균형 잡힌 영양공급을 가능케 하는 양이다.
만약 사람들이 백밀가루 대신에 통밀가루로 먹는다면 어떠한 결과를 짐작할 수 있을까? 밀은 연간 약 7억7천370만t이 생산된다. 통밀에서 밀기울을 제외하고 백밀 가루를 빼내는 분쇄율은 쌀의 도정률보다 훨씬 적어서 통밀에서 겨우 50~60% 정도의 백밀 가루를 얻어낸다. 통밀가루와 백밀가루의 생산량을 합치더라도 연간 5억5천700만t의 밀가루가 생산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결국 28%에 해당되는 2억1천600만t 이상이 밀기울이며 이건 사람의 식량에서 제외돼 가축 사료로 이전된다. 1인당 밀가루 소비량이 가장 많다는 미국의 경우 연간 1인당 약 60kg의 밀가루를 소비하고 있다.
연간 1인당 100㎏의 전립분 통밀 가루를 넉넉히 먹는다고 가정할지라도 추가 통밀 가루 생산량 2억1천600만t으로 26억명 이상의 인구에게 1년치 식량이 될 것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영양 성분의 증가는 물론이고 추가 생산분의 통밀 가루로 지구 인구의 3분의 1에 넉넉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셈이다.
통산물 섭취로 탄소배출 감소
현미 소비가 가져다주는 탄소배출의 절감효과는 어떠할까? 한국의 경우 쌀 1㎏을 생산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562㎏으로 추산된다. 그렇다면 쌀을 먹는 사람들이 만약 현미로 먹어준다면 5천400만t의 잉여 생산량을 계산할 때 연간 3천만t 이상의 탄소배출을 감축할 수 있다. 현미를 먹게 되었을 때 건강증진 효과는 물론 기아 해결과 현저한 탄소배출 감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유쾌해진다.
백밀가루 생산보다 훨씬 단순한 통밀가루 생산 공정상의 탄소배출 절감 효과는 무시하더라도, 만약 인류가 통밀가루로 먹어주기만 한다면 잉여 통밀가루 생산량 2억1천600만t의 획득으로 인해 약 1억3천700만t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기송 (ISC 농업발전연구소장·경제학 박사) |
즉 통째로 섭취가 가능한 농산물을 통곡물 또는 통산물로 섭취해주기만 한다면 내 몸도 살리고 지구촌 기아에 노출된 궁핍한 사람들도 살리고, 지구 환경까지 더불어 살릴 수 있다는 말이 결코 허언도 과언도 아니라는 말이다.
<ISC 농업발전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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