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람 냄새

  • 이윤경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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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7  |  수정 2021-04-27 08:15  |  발행일 2021-04-27 제15면

[문화산책] 사람 냄새
이윤경〈아동문학가〉

로즈마리를 심었다. 볕이 잘 드는 마당에 페퍼민트와 메리골드도 나란히 심었다. 향이 나는 식물을 좋아한다. 향수나 향초를 좋아하고, 아로마나 선향을 피우고 그 냄새를 쫓는 일을 좋아한다. 향(香)이라는 말은 관념적이고 포괄적이다. 향기보다는 냄새가 개별적인 사물의 본질에 더 닿아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냄새가 나면 누구나 저절로 눈이 감기고 입 꼬리가 올라가게 된다.

얼마 전 인센스 스틱이라고 부르는 선향을 샀다. 서재에 피워두고 책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차분해져 가끔 사용한다. 시골집에 들고 가려고 현관 입구에 뒀던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온 집을 뒤져도 보이지 않던 상자가 쓰레기봉투에서 나왔다. 선향은 쏟아져 반쯤은 부러졌고, 겨우 추려 건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쓰레기로 버려져 동강 동강 부러진 건 향 뿐 아니라 내 마음도 그랬다. 종교적 신념이 삶의 모든 우선순위인 시어머니의 눈에 뜨인 며느리의 물건은 불경스럽고 못마땅한 것이었다. 그것의 용도가 무엇이든 간에 향이라는 물건 자체는 시어머니에겐 버려야 할 대상이었다. 나는 한동안 집에서 마음을 닫고 말도 닫았다.

시골집에서 향을 피웠다. 보라색 스틱에선 라벤더 냄새가 나고 초록색에서는 숲속 젖은 나뭇잎 냄새가 났다. 가늘고 긴 연기가 가볍게 일렁이며 흩어진다. 냄새가 호흡을 따라 내 안으로 들어온다. 전과 다른 냄새다. 뭔가 빠져있다. 분명 그 냄새는 맞는데 냄새에 묻어 있는 고요와 잔잔한 설렘이 사라졌다. 쓰레기봉투에 들어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냄새, 내 취향이 무시된 속상함과 서운함이 뒤섞인 잡냄새들로 머리가 아파왔다. 결국 냄새의 밑바탕에는 내 마음이 깔려 있었다. 향수로 치자면 베이스노트(base note), 맨 아래에 묵직하게 깔려 오래 가는 냄새 말이다.

몇 년 전 모나코에서 프랑스 니스로 가는 길목에 에즈라는 마을을 들른 적이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배경지인 그라스에 가고 싶었으나 에즈의 향수공장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찾은 궁극의 냄새, 절정의 냄새는 사람의 체취였다. 냄새를 갖지 못한 그가 냄새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냄새, 그를 둘러싼 환경의 냄새, 그 냄새를 알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수월해질 것이다. 마음에 깔린 베이스노트가 맑고 깊어야 좋은 냄새와 잘 섞이어 들것이다. 화나고 서운한 마음은 접고 다시 향에 불을 붙여본다.
이윤경〈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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