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
지난 2월 하순, 대구는 공포가 가득한 텅 빈 도시로 변했다. 2월18일 이후 신천지교회 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미증유의 모습이 속출했다. 코로나19 대응 수준이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된 다음날인 2월24일(월요일) 낮, 사무실에서 나와 걸어가는 도중 버스들을 계속 살펴보았다. 버스 20대 중 승객이 한 사람도 없는 버스가 10대였다. 7대는 한두 사람이 타고 있었고, 나머지는 세 사람이 보였다. 대형마트에는 마스크 구입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고, 아파트 우편함에는 마스크가 꽂히기 시작했다.
29년 전인 1991년에도 대구에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는 수돗물 오염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극심한 고통과 불편 속에 안전한 생수를 구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약수터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구미 두산전자가 1991년 3월 엄청난 양의 페놀 폐수를 낙동강으로 유출한 것이다. 페놀은 대구의 상수원으로 사용되는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되면서 낙동강 수계 1천만 주민들이 페놀 오염 수돗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은 단순한 수돗물 악취소동으로 넘어갈 뻔했으나 당시 KBS대구방송총국 류희림 기자(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가 현장 취재로 페놀 오염을 확인, 페놀 유출 사흘 후인 3월17일 낮 뉴스부터 KBS TV와 라디오를 통해 특종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태는 두산제품 불매운동으로 확산하고, 그런 가운데 안일하게 판단한 환경처의 조업재개(4월9일) 이후 또 한 번 페놀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처장관은 경질됐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이 지난 10월21일 개봉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 사건의 근본 문제는 두산전자가 이기적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독극물인 페놀을 강물에 흘려보낸, 무지하고 무책임한 의식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인한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가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팬데믹은 기후변화를 무시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불교 경전이나 인도 설화에 나오는 공명조(共命鳥)·비익조(比翼鳥) 이야기다. 공명조는 몸 하나에 머리가 둘 달린 새다. 한쪽이 자면 다른 한쪽은 밤새 지켜주는데, 하루는 깨어있던 머리가 맛있는 열매를 혼자 먹었다. 다른 쪽 머리는 자신이 먹지도 않았는데 포만감을 느끼자, 분한 마음에 열매를 먹은 머리가 잠든 사이에 독이든 열매를 삼켜버렸다. 공명조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이 눈과 날개가 각기 하나씩으로, 서로 짝을 이뤄 협조하지 않으면 날지도 못한다.
자기만 위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공멸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일깨우고 있다. 어리석게 공생관계임을 망각한 채 자신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결국 함께 피해를 보고 멸망하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한 마리 공명조와 같은 것이다. 이런 이치를 망각하면 공멸하게 됨은 자명한 일이다. 너와 나, 부자와 빈자, 내국인과 외국인, 소수자와 다수자 사이도 마찬가지로 공명조와 다름없다. 지구촌 구성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이것을 확실히 깨닫고 인식을 바꾸게 된다면, 코로나19로 치른 고난과 희생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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