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인 A씨는 지난해 8월 대구 지역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담배를 하루 한 갑 이상 피우지만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던 A씨는 소화 불량으로 동네 작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한 결과, 췌장에 혹이 생겼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대학병원을 찾은 것이었다. 혈액검사와 영상검사를 추가해 췌장체부(몸통)에 발생한 췌장암으로 진단, 수술을 했다. 대부분의 췌장암은 황달이나 복통, 당뇨 발생, 체중 감소 등 증상이 있어 발견되는 경우는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A씨는 수술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어렵게 수술을 한 이후 A씨는 퇴원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예후를 관찰하던 중 수술 6개월 만에 암이 간으로 전이돼 현재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특히 예전처럼 수술 등의 치료를 통해 건강상태가 개선되기 힘든 상황이다.
체중 감소·소화 장애·황달 증상
생활습관 개선·조기 검진이 중요
악성화되기 전 외과적 절제 최선
수술 땐 종양 위치 등 잘 고려해야
◆췌장암, 흡연자 위험도 5배 높아
국가 암 검진 프로그램과 정기 건강검진 프로그램 덕분으로 대부분의 암을 조기 발견해 5년생존율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하지만 췌장암의 예후는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고, 다른 소화기암에 비해 생존율도 3분의 1 수준에 못 미치는 정도다.
지난해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를 보면, 2017년에 우리나라에서는 23만2천255건의 암이 새롭게 발생했는데 그중 췌장암이 7천32건으로 전체 암 발생의 3%(8위)를 차지했다. 연령대로 보면 70대가 32.8%로 가장 많았고, 60대가 25.4%, 80대 이상이 19.4%의 순이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3천733건으로 남성의 암 중 7위, 여성은 3천299건으로 여성의 암 중에서 8위를 차지했다.
현재까지 췌장암의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진 게 없다. 하지만 흡연을 할 경우 상대 위험도가 5배가량 증가하기 때문에 금연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의들은 전했다. 그 외에 비만, 당뇨병, 만성 췌장염, 음주, 가족성 췌장암 등도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확정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췌장암에 주효한 항암제가 개발, 좋은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췌장암 예방에 중요한 것은 금연과 함께 생활 습관의 개선과 조기 검진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발견해 외과적 절제를 하는 것이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전문의들은 입을 모았다.
진단장비의 발전으로 1~2㎝ 미만 크기의 췌장 종양이 검진에서 자주 확인돼 '췌장암이 걸렸다'며 외래 진료실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지만, 이들 대부분은 절제수술만 시행한다면 완치까지 생각할 수 있는 췌장낭종(물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낭성 종양은 대부분 양성 경과를 나타내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악성화 세포로 변형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악성화가 되기 전에 절제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췌장은 해부학적 위치가 주위 여러 장기와 복합적으로 되어 있어 췌장 두부에 혹이 있는 경우 췌장·십이지장·담도 등 병합절제를 시행해야하므로 수술 후 합병증 발생률이 췌장 몸통이나 꼬리 부분보다 높아 수술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복강 내에 발생하는 소화기 계통의 암들은 진단 방법 및 수술 기법의 향상으로 예후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지만, 췌장암은 과거와 비교해서 예후가 거의 나아지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전문의들은 "췌장종양의 악성화 정도와 종양의 위치, 수술 후 합병증 발생 위험, 환자의 연령 및 컨디션을 고려해 위험과 이득을 잘 따져서 이득이 많다고 판단될 때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췌장암, 나이·성별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
췌장낭종은 환자의 연령, 성별, 종양내용물의 성상, 췌장에서 발생 위치, 모양, 크기 등이 서로 달라 네 가지 정도의 특징적인 종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표적인 췌장 낭성종양으로 종양 내에 포함된 물질의 성상에 따라 장액성 종양과 점액성 종양으로 나뉘고, 주췌관의 연관성 여부에 따라 췌관 내 유두상 점액종양, 그리고 종양의 성상에 따라 고형 가유두상 종양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적인 소견을 미리 알아 두면 췌장암에 걸렸다는 불필요한 공포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첫째, 장액성 낭성종양은 고령의 여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종양으로, 췌장 몸통과 꼬리에 주로 발생하며 벌집 모양의 비교적 작은 낭종 여러 개가 합쳐져 있는 형태로 내부에 섬유화 또는 칼슘이 침착돼 있다. 수술 후 대부분 양성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술 전 영상에서 장액성 낭종이 의심된다면 크기가 크지 않은 이상 수술하지 않고 경과 관찰하는 것이 좋다.
둘째, 점액성 낭성종양은 40~50대 여성에서 발생하고 췌장 몸통 및 꼬리에 주로 생긴다. 비교적 큰 형태의 낭종이 합쳐져 있거나 한 개의 큰 낭종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장액성 낭종보다 악성화하는 경우가 몇 배 되기 때문에 영상검사에서 의심된다면 수술을 시행해야 한다.
셋째, 고형 가유두상 종양은 청소년기 및 젊은 여성에서 발생하는 종양으로 종양덩어리 내부에 출혈이 일어나고 이차적으로 괴사성 낭종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악성화 가능성은 조금 낮지만 젊은 여성에서 발생하므로 조기에 절제하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췌관 내 유두상 점액종양은 특징적으로 주췌장관이 늘어나 있고 점액성 췌장액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췌장관을 막아 췌장염을 주로 일으키기 때문에 복통이 잦다. 고령의 남자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악성화하는 경우가 가장 높아 발견되면 적극적인 수술을 시행해야 한다.
계명대 동산병원 김용훈 교수(간담췌외과)는 "췌장암의 전구 질환으로 생각되는 췌장 낭성종양이 진단기법 및 조기 검진의 영향으로 점점 많이 발견되고 있어 조기에 적절한 판단을 통해 치료하게 된다면 머지 않아 췌장암의 예후와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이 있으리라 생각한다"면서 "췌장에 종양이 생겼다고 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지 말고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를 시행한다면 어려운 췌장암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도움말=김용훈 계명대 동산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노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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