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대구문학관장 |
#구월
가을 기운으로 더위 기세가 위축된다. 푸른빛과 검은빛들은 노란, 붉은 파스텔 톤으로 변한다. 나무들은 무절제의 무성을 반성하며, 제 잎들의 그늘들을 털어낸다. 사람들의 폭염에 탄 몸들이 새삼 냉기를 느끼고 감성의 옷을 더 껴입으며 따뜻한 커피 맛에 빠져든다.
시인이 아니라도 감정은 수척해지며, 추억도 미래 전망도 뒤숭숭해진다. 그런 가운데, 색 바래어 오히려 화려한 단풍의 숲으로 난 길로 낙엽을 밟는, 돌이킬 수 없는 여정의 길에 들어서곤 한다.
#기상이변
그러나 요즘 계절의 전환은 순조롭지 못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승이 계속되는 가운데 맹렬한 더위, 유난히 긴 장마, 잇따른 태풍….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지구의 기상이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다. 여름에 걸쳐 이례적인 유럽의 폭염, 최고조에 이른 시베리아의 기온, 45.9℃를 기록한 프랑스, 멕시코에서는 더위로 끓다가 돌연 우박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 일본 규슈와 중국의 폭우로 인한 홍수가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 속도도 가속화하고 있다. 기상에 대한 제반 통계들이 심상치 않다. 지구의 온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북반구 지역의 경우 지난 1천년 가운데 20세기 이후의 온도 상승 폭이 가장 크다고 한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3차 보고서에 따르면 2100년까지 지구온도는 2~6℃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빙하기에도 기후 변화가 이렇게 급상승하지는 않았다. 2.8~5℃ 정도였는데도 대 멸망의 변환을 초래했는데, 그보다 더 높은 기온 상승이니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기후 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들이 2020년대에 인류가 맞닥뜨릴 가장 높은 위험요인이다. 세계경제포럼(WRF)이 최근 발표한 '2020년 세계 위험 보고서'에 따르면 발생위험이 가장 큰 위협 톱5 가운데 기상이변이 첫손가락에 꼽혔다. 그다음으로 기후변화 대응실패, 자연 재해, 생물 다양성 손실, 인간 유발 환경 재난이 꼽혔다. 환경문제가 인류가 직면할 가장 위험한 요인 톱5를 독차지한 것이다.
#각성과 환기
전문가들은 논란이 분분한 상태지만, 대체로 기상이변이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 진단한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 연료의 과도한 사용은 대기 중 온실가스를 대량 방출해왔다. 현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30% 가량 증가했다. 매년 1%씩 증가하는데, 이대로라면 2100년에는 지금의 배가 될 것이다. 지구의 온도 상승으로 인해 기후와 생태계의 변화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심도 있게 논의된 게 이 문제였다. 지구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 촉진' 등의 논의도 여러 국제회의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각국의 이해가 걸림돌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 간의 의견이 엇갈려 여전히 효과적인 대응책의 실현이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인간의 환경파괴 산물인데, 이보다 더한 재앙이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는 셈이다. 이 재앙의 공포가 환경을 제대로 챙겨야 한다는 데 각성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시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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