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의 모녀 간호사, 전현례씨와 김수연씨 |
코로나19가 대구를 덮쳤을 시기, 간호의 최전선에 함께 서 있었던 모녀가 있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의 전현례(56)·김수연(27) 간호사다. 이들은 병원이 지난 2월 21일 코로나19 거점치료센터로 지정된 후 코로나19 병동 근무를 자처해 폭풍같은 시기를 함께 버텨왔고 긴 터널을 지나 오늘을 맞았다. 딸 김씨는 2월 21일부터 동산병원 재개원(6월 15일) 이후까지, 어머니 전씨는 2월 22일부터 3월 20일까지 이 병원에서 근무하며 매일 환자들을 치료했다. 간호 경력은 전씨가 33년, 김씨가 3년이다.
지난 7일 만난 두 모녀는 당시 상황을 "그야말로 전쟁터였고 두려움 그 자체였다"고 담담히 회상했다. 구급차 수십대가 병원을 드나들고 모든 병동은 아비규환 이었다. 3년차 간호사는 물론 30년 경력의 고참 간호사도 처음 맞는 광경이었다.
수백명의 환자가 드나드는 병원에서 의료용 방호복 차림으로 보냈다. 처음에는 눈앞에 김 서림이 심해 앞을 보기도, 숨쉬기도 어려웠고다. 환자 상태가 안 좋아져도 방호복이 익숙하지 않아 빨리 뛰기도 힘들었다. 마스크 고무밴드가 피부에 쓸려 생기게 된 흉터는 4달이 지난 지금도 목 뒤에 남아있다. 감염 우려와 인력 부족으로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오면 고인을 닦고 시신처리용 백에 넣는 일도 간호사가 맡았다. 오랫동안 집에도 가지 못했다. '우리가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잘 때도 마스크를 꼈다.
모녀는 "정말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간호를) 하기 싫다' 같은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며 웃었다. 전씨는 "병원 안에서 잘못하면 내가 감염이 될 수도 있고, 감염을 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지만, 사상 초유의 일이라 다른 감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당시에는 병원 외부와 접촉이 안됐다. 하루가 일에서 일로 끝나다보니 밖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바깥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시 사진을 보니 병원 앞 서문시장에 오가는 사람도 없고 만개한 벚꽃을 보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모녀 사이는 더 애틋해졌다. 방호복을 매일같이 착용하다 보니 누가 누군지를 구별하기 쉽지 않았지만, 모녀는 눈이 마주치면 서로를 알아봤다. 그리고 서로가 지치지 않도록 힘을 불어넣었다.
전씨는 "딸이 마냥 아이로 보여 걱정도 되고 딱했다. 볼 때마다 조심하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김씨는 "내 어린시절 영웅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간호사로서 다시 겪지 못할 일을 함께 한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고 했다.
모녀는 "시민 누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도리어 의료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정말 감사드린다"라며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던 대구가 이만큼이라도 회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꿈 같다"고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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