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세 달가량 경과한 8일 대구 달서구 도원초등 인근에 설정된 어린이보호구역에 불법주차된 차량 사이로 어린이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
지난 2일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에 "민식이법 놀이, 정말 유행인가 봅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영상이 게시됐다. 영상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는 차량을 한동안 뒤쫓는 모습이 담겼다.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일부 어린이들이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는 차량 앞에 일부러 뛰어 들거나 뒤를 쫓는 일명 '민식이법 놀이'를 즐기는 현상까지 나타나 시민들이 불안과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운전자, 시민들은 무조건적인 처벌보다는 악용 사례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처벌이 강화된 만큼 불법 주정차를 근절하는데 주력하고, 피해 당사자인 아이들 교통안전 교육도 지금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민식이법'
8일 오후 1시쯤. 대구 달서구 용산초등. 학교 담장을 따라서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통학로가 정비돼 있었지만,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으로는 불법 주정차한 차량이 가득했다. 대부분의 차량은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진입하자 불법 주차한 차량 사이를 기어가듯 서행했다. 어린이 모습이 보이자 한참 정차해 기다리는 차량도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보가 불법 주정차에 막혀 차도로 걸어야했지만, 주위를 살피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친구 여럿이 함께 하교하던 한 초등생 무리는 서로 장난치다가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면했고, 한 아이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걷다가 다가오는 차량의 경적 소리에 황급히 몸을 피하기도 했다.
태권도 학원을 운영하는 관장 A씨는 "민식이법 이후 학생들이 어린이 보호구역은 자신들이 마음 놓고 놀아도 되는 자기 홈그라운드 정도로 생각한다"면서 "학원 차량 운전자들은 학교 근처에는 운행을 안하면 안 되느냐고 물을 정도이다"고 하소연했다.
자녀를 차량으로 등하교 시키는 학부모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초등생 자녀를 둔 최모(37)씨는 "학교 근처 안전 장치가 제대로 설치된 곳이 없다"면서 "우선 근본적인 안전 장치부터 설치하고 민식이법을 준수하라고 해야하는 게 아닌가. 등하교를 시키는 학부모들도 항상 불안해하며 다닌다"고 했다.
민식이법은 '과실범인 교통사고 가해자를 고의범으로 취급한다'며 과잉처벌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에 법이 시행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을 개정해주십시오', '민식이법을 준수할 자신이 없다', '민식이법 실질적 제안' 등 법 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듯 지난 4∼5월 상위 5개 손해보험사 벌금과 형사합의금 등 보장을 강화한 '민식이법 위반 보장' 상품 운전자 보험 신규계약 건수는 131만여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43만1천631건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났다.
주요 내비게이션 업체들은 어린이 보호구역을 우회하는 경로를 안내하는 기능을 내놓기도 했다. 돌발상황을 아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초보 운전자 권모(여·30)씨는 "네비게이션이 어린이 보호구역을 알려주기만 해도 긴장된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제외한 경로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을 설치할 생각"라고 했다.
◆안전장치 마련 뿐아니라 교육도 중요
대구시와 각 지자체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단속건수 및 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시는 올해까지 어린이보호구역 앞 약 82개소에 신호등을 설치하며 어린이보호구역 안전펜스, 과속방지턱 등을 34개소에 설치할 예정이다.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게 하고 운전자가 이를 쉽게 인지하도록 하는 '옐로 카펫'도 총 30개를 추가로 설치한다.
각 지차체별도 어린이 보호구역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구는 5개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앞 과속방지턱, 도로반사경 등을 설치하고 이미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통행펜스를 설치한다. 중구도 올해 4천 700만 원을 투입해 종로초등 등 9개소에 표지판을 달거나 주정차 금지선을 도색한다는 계획이다. 북구와 남구도 초등학교 근처 주차금지선,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판, 방어울타리, 발광형 표지판 등 안전 장치를 설치한다.
하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을 자주 오가는 어린이에 대한 교육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8일 오후 1시쯤 달서구 용산초등 앞에서 만난 학생들 10명 가운데 민식이법에 대해 알고 있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민식이법 자체가 주로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는 법안인데 특별히 프로그램을 준비하진 않고 있다"라며 "도로에서 자동차를 조심하고 신호등 지키기·횡단보도로 건너기 등 일반적 내용의 교육은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지역 어린이 보호구역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근처 542곳, 초등학교 근처 241곳 등 총 783곳이다. 8일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월 25일 민식이법 첫 시행 후 103일이 지난 이달 5일까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과속 단속 건수는 총 7만 9천 925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약 775건이 과속 단속이 이뤄진 것.
문용호 대구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운전자는 아이들 특성을 고려한 방어운전을, 학교와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주의를 주고 조심하며 다닐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면서 "교통안전 홍보물을 초등 신입생에 나눠주고 불법 주정차량에 '안전 경고장'을 부착하는 등 경찰도 노력하고 있으니 시민들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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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정지윤 기자입니다.이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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