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우리가 노을의 붉은 빛을 좋아하는 이유는 노을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이 마음을 가장 차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저녁이 되면 노을을 바라보며 곧 잠을 잘 준비를 하도록 진화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밤은 어둠에 잘 적응한 위험한 포식자들이 많았으므로 차라리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죽은 듯이 자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생체시계의 주기는 24시간보다 조금 더 길다. 그래서 매일 리셋을 해주지 않으면 밤에 자고 낮에 활동하는 리듬이 깨져버린다. 이런 일주기리듬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빛이다. 노을의 붉은 빛의 파장이 우리 뇌를 진정을 시켜서 잘 준비를 시키고 어둠이 내리면 멜라토닌이 분비되면서 뇌에게 어둠이 내렸으니 잠에 빠져들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윽고 아침 동이 트면 약간의 빛이 눈꺼풀을 통과해 망막에 포착이 되면 시교차상핵에서 하루가 시작되었으니 일주기리듬을 리셋해서 시작한다.
최근에 이러한 일주기리듬과 수면주기가 망가져 오는 청소년과 젊은 성인들이 많다. 더구나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해 바깥출입이 줄어들자 더 심해진 것 같다. 수면시간이 앞으로 이동을 해서 동이 틀 때쯤 자서 오후 1~2시가 돼서야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몸은 대한민국에 있지만 신체리듬은 유럽에 맞춰 살게 된다. 게다가 일어나서 몇 시간 안 돼서 해가 지니까 마치 해가 짧은 북유럽 북단에 사는 것처럼 된다. 뜻하지 않게 시차병을 앓게 되거나 야간 근무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인공불빛으로 충분히 보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습관이 장기화되면 뇌를 비롯해 신체 각 기관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교대 근무자들의 경우 빛-어둠 노출과 활동-휴식이 변화가 심하고 서로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현지시간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게 된다. 그 결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위궤양 발병률이 8배나 높고 심장혈관 사망률, 만성적 피로, 과도한 졸음, 수면 장애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또한 교대 근무자들이 약물 남용과 우울증에 빠지는 비율 역시 훨씬 높다. 당연히 주의 집중을 요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으므로 교통사고나 산업재해의 위험도 높아진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늦게 자는 습관이 든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하루 종일 학원을 전전하고 숙제를 하는데 온전히 시간을 써버리면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소통시간을 새벽에 만들 수밖에 없다. 일단 같은 집에 사는 잔소리꾼들이 잠이 들어야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습관이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이어지면 모자란 수면은 학교에서 엎드려 자는 걸로 보충을 하게 된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습관이 유지되면 직장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어 우울증이나 수면장애가 더 심해질 수가 있다.
왜 일찍 못 자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일찍 자면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 시간에 재미를 느꼈는데 왠지 그냥 잠으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당연히 효율적인 수면사이클이 돌아가지 않으니 기억 저하와 피로감이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수면시간을 정상적으로 돌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처음에는 힘들더라도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 문제도 우리의 잘못된 교육시스템, 더 나아가 서열화된 대학 및 사회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당장 고칠 수 없는 문제이니 스스로 수면환경을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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