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통기타 라이브 밥집 영천 '야사동 339'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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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8   |  발행일 2020-05-08 제35면   |  수정 2020-05-08
'대구 라이브 킹' 통기타 가수 정두천, 양파 베이스 찜갈비와 컬래버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통기타 라이브 밥집 영천 야사동 339
대구 통기타 동우회 창립과 통기타그룹 '코러스 중창단'의 산파역이기도 한 정두천 사장이 최근 영천 야사동에 라이브 밥집 '야사동 339'를 오픈했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통기타 라이브 밥집 영천 야사동 339
'야사동 339'의 메인 메뉴인 양파 소스를 베이스로 한 찜갈비와 봄나물 반찬의 푸릇한 앙상블.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통기타 라이브 밥집 영천 야사동 339
찜갈비 전문점 '야사동 339' 외관 전경.

음악과 음식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닌다. 뮤지션의 정점에 라이브클럽이 있다. 음식 손님이 라이브 관객으로 호환되는 구도라면 뮤지션의 노후는 그런대로 윤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현재 대구의 정통 통기타 라이브 무대는 거의 전멸된 상태다. 그러다 보니 통기타 가수들은 생계를 위해 버스킹도 하고 각종 행사를 전전할 수밖에 없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다수 지역 포크싱어들의 공연과 행사도 절멸되다 보니 다들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영천 야사동 야산에 있는 '라이브 밥집'으로 불리는 찜갈비 레스토랑 '야사동 339' 정두천 사장(55). 그도 코로나19를 어렵게 극복하고 있다.

정 사장은 1988년 12월10일 지역 통기타 가수 66명이 손을 잡고 출범시킨 '대구 통기타 동우회'의 3대 회장을 맡았다. 모르긴 해도 현재 지역에서 가장 많은 통기타업소 출연 가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가 3년 전 영천으로 귀향해 음식과 음악을 동시에 핸들링하고 있다.

왼손잡이 포크싱어
스물 넘어 첫 왼손잡이용 기타와 만남
지역 통기타 가수 아지트로 출근 도장
무대 테크닉·싱어롱 진행 능력 겸비
대구 통기타 동우회 3대 회장도 맡아


정 사장은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전설의 포크싱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작고한 김광석이다. 그가 태어난 곳을 방천시장 김광석길로 아는 이가 많지만, 실제는 봉덕시장 근처다. 정 사장도 훗날 그 사실을 알고 봉덕동에 대해 더 많은 자부심을 갖게 된다.

협성중·정동고를 졸업한 그는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처럼 통기타 가수에게는 엄청 불리한 '왼손잡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기타는 모두 오른손잡이용이다. 기타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하지만 집안 분위기는 좋았다. 통기타 집안인 탓이다. 셋째 이모가 시집갈 때 주고 간 통기타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왼손잡이가 사용하려면 기타 6번과 1번 줄의 위치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는 그것도 모른 채 그냥 무작정 음감을 익힌다.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선 왼손잡이 기타를 꼭 구해야만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왼손잡이용 기타를 구하기 힘들었다. 주문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평균 가격이 15% 이상 올라간다.

스물한 살 때 운명의 기타를 만나게 된다. 시내 영창피아노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기획상품으로 나온 왼손잡이 통기타를 4만8천원에 판다는 광고문이 눈에 띄었다. 그게 생애 첫 통기타다.

통기타 무대 전 그는 견습 DJ 시절부터 보낸다. 대구시내 동아백화점 맞은편에 있던 '쉘부르' 음악다방에서 6개월 정도 판돌이를 했다. 주말에는 라이브무대가 있었다. 추성호, 함희진, 이상래 등이 올라갔는데 그들의 고수급 솜씨에 매료가 된다.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그는 당시 지역 통기타 가수들의 아지트라 할 수 있는 이색 라이브카페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합창의 집 코러스'였다. 대구에서 통기타 치는 사람 치고 거기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일단 사흘이 멀다 하고 코러스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석중현 사장한테 오디션을 받아 간신히 무대에 선다. 이때 선배급 통기타 가수가 포진해 있었다. 김형철, 신재형, 이상래, 박종남, 김종국, 김용철 등 지역의 통기타 군단 멤버가 총망라됐다. 코러스는 합창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술을 팔지 않았다. 커피값은 500원.

그는 낮 타임을 맡았다. 특별한 출연료는 없었다. 그냥 실비에 만족했다. 그는 거기서 기타에 관련된 여러 테크닉을 대충 다 익히게 된다.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구라(멘트), 그리고 레크리에이션 강사 못지않은 싱어롱 진행 능력까지 이때 겸비할 수 있었다. 코러스가 음악의 도약대였다.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통기타 라이브 밥집 영천 야사동 339
정두천 사장이 합창의 집 '코러스'에서 멤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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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천 사장의 코러스 중창단 공연 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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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천 사장이 통기타 동우회 '노사봉' 회원과 함께 거리모금 공연을 하고 있다.

동성로 라이브 무대
반주기 없던 시절, 악보 4천곡 재산 1호
트로트·군가·팝송·블루스 장르 불문
90년후반 팔공산 라이브 호황기도 맛봐
박종남 등 4人과 그룹 '코러스' 결성

이후 그는 코러스를 벗어나 독립했다. 미도백화점 5층 무랑루즈를 비롯해 동성로 레스토랑, 호프집, 스탠드바 등의 라이브무대로 진출했다. 당시는 엘프란 반주기가 없던 시절이라 악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라이브 무대를 자유자재로 구동하기 위해선 수천곡의 가요와 팝송 리스트는 필수였다. 그렇게 악보를 가지다 보니 지금 얼추 4천여 곡을 품게 됐다. 그에겐 솔직히 통기타보다 악보가 재산목록 1호였다. 큼지막한 블록 하나를 들고 다니는 것 같이 묵직했다. 업소 통기타 가수는 전천후 폭격기처럼 노래를 핸들링해야 먹고살 수 있었다. 트로트, 민요, 군가, 동요는 물론 가곡, 샹송, 재즈, 블루스 등 장르 불문이다. 당시 선배인 오영훈은 지역에서 가장 다양한 팝송 레퍼토리를 자랑했다.

동성로 라이브 시절은 얼추 10년. 느긋한 식사시간은 언감생심. 찬모 담당 이모를 잘 구워삶아 공연 전에 벼락치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당시 출연료는 월 12만~15만원. 한 스테이지 30분 노래를 불렀다. 죽이 맞은 친구는 90년대 중반에 문을 닫게 되는 코러스의 마지막 사장이었던 이용철이었다. 그와는 빛과 그림자 같은 인연이었다.

80년대 맹위를 떨치던 음악감상실과 음악다방이 사양길로 내려앉고 있었다. 통기타 라이브도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성로 시대를 뒤로하고 92년부터 11년간 우방타워(현 이월드)에 있는 타워랜드에서 필리핀 밴드와 공연을 했다. 당시 지역 통기타 가수로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 그와 이용철, 드러머 정태국과 조만수, 베이스 김필곤, 기타리스트 조영대, 건반 이황제, 그리고 김숙 등 4명의 여성 코러스와 여러 방식의 하모니를 이뤘다. 이 밴드는 99년쯤 6인조 7080밴드로 강화된다. 경산의 7080무대를 주도한다.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통기타 라이브가 팔공산 순환도로권에서 부활한다. 시인과 농부, 산과 배, 산모롱이, 배따라기, 호반, 너울지기, 금강산, 까치산 등 무려 40여 개 업소가 난립한다. 그에겐 이때가 최고 호황기였다. 하루에 무려 13개 업소를 돌았다. 살인적 동선이었다. 업소마다 기타와 복사한 악보집을 비치해놓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다. 정오 무렵 팔공산에서 한 타임, 그리고 우방타워에서 한 타임, 그리고 다시 팔공산으로 와서 10군데를 돌고 심야에 TBC대구방송국 맞은편 라이브카페 '레일로드'로 가서 한 타임, 오전 1시쯤 수성못 동편에 있는 LP카페 '스쿨'에서 일과를 끝낸다. 결국 너무 무리해 병원에 실려 간다.

통기타의 사회적 연대를 위해 '코러스'란 다음카페 활동도 했다. 이영기를 축으로 한 사노봉(사랑을 노래하는 봉사단)에도 관여해 동대구역, 대구백화점, 수성못 등에서 거리모금행사를 했다. 라이브를 넘어 2012년부터 5년간 기타학원(코러스기타교실), 2004년에는 코러스 시절을 그리워하던 박종남, 김종국, 이용철, 최관영과 함께 통기타그룹 '코러스'도 결성한다.

찜갈비 라이브 '야사동 339' 탄생
아버지께 못다한 효도 위해 간 영천행
새로운 감각 라이브 신개념 업소 꾸려
단맛 조절 연구, 영천 버전 찜갈비 개발
별별 나물 버무려 약처럼 내놓는 반찬


나름 식도락가 유전자를 가져 이용철과 시내에서 막창집 '허리케인 J'를 오픈했다. 이때도 동우회와 코러스 멤버 등이 막창 라이브를 지원 사격해줬다.

막창을 딛고 3년 전 본적인 영천으로 가서 승부수를 던진다. '라이브 밥집'으로 불리는 '야사동 339'를 2018년 3월 오픈한다. 수십 년 닦아놓은 대구에서의 연고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다. 영천으로 내려간 결정적 이유가 있다. 혈족 때문이다. 아버지와 동생이 몸져누운 탓이다. 지난 세월 라이브 때문에 제대로 효도해보지 못한 게 늘 죄 밑이었는데 이 기회에 그걸 갚고 싶었다. 현재 야산 부지를 매입해 새로운 감각의 라이브가 있는 신개념 업소를 만들고 싶었다. 계명대 건축공학과 출신이라서 모처럼 주특기를 사용해 본다.

손맛이 남다른 세 여인(어머니와 두 이모)이 주방을 철벽 수비하겠다고 했다. 천군만마였다. 건물 2층에 살림집을 차렸다. 지금 거기서 어머니·이모와 함께 지낸다.

하지만 '호사다마'였다. 오픈한 지 4개월 만에 동생, 지난해 3월 아버지까지 연이어 고인이 된다. 허망했다. 멘붕이 왔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맘은 어떻겠는가. 그는 더욱 이 업소에 올인해야만 했다.

특히 셋째 이모는 식탁에 활력을 주었다.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이랄 정도로 식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초봄이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인근 야산을 이 잡듯 뒤져 별별 나물을 캐온다. 달래·냉이·씀바귀는 이 집에서 가장 흔한 것이다. 이밖에 소루쟁이, 찔레, 화살나무, 민들레, 황새냉이 뿌리, 갈퀴나물, 물냉이, 야생갓, 원추리, 지칭개, 개망초 등을 조물조물 버무려 약처럼 낸다. '이게 무슨 나물이냐'는 단골들의 질문이 쇄도한다.

메인 메뉴는 찜갈비. 처음에는 짬뽕집 등도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영천에서는 먹기 힘든 새 버전의 찜갈비를 개발했다. 동인동 버전은 마늘, 여긴 양파를 베이스로 한다. 역시 단맛 조절이 관건이었다. 3~4차례 수정을 통해 너무 달지도 밍밍하지 않은 단맛의 초점을 찾아낸다. 점심특선으로 소고기국밥, 국수, 닭개장, 추어탕, 고디탕 등도 대접한다.

그는 서빙, 배달, 계산, 주차관리 담당이다. 분위기 봐가면서 노래도 불러준다. 봄·가을에 코러스 중창단 주최로 정기공연을 연다. 첫째·셋째 수요일 휴무. 영천시 야사동 339번지.

글·사진=이춘호 음식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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