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山鳥飛絶(천산조비절) 萬徑人종滅(만경인종멸) 孤舟蓑笠翁(고주사립옹)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인 당나라 시인 유종원이 쓴 유명한 한시 '강설(江雪)'이다. 번역하면 '산에는 새 한마리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 발자취 끊어졌네, 외로운 조각배 위 삿갓 도롱이 쓴 늙은이, 홀로 낚시질하네 강에는 눈만 내리는데'쯤 된다. 고교 시절 국어시험이나 기업 입사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던 고난도 한시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까먹지 않고 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 고급 한시가 생뚱맞게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구 시내가 텅텅 비어간다. 대구뿐 아니라 확진자 발생 지역은 다 비슷하다. 한시의 표현대로 거리에는 사람 발길이 뜸해지고, 상가들은 철시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식당에도 술집에도 사우나 목욕탕에도 사람이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대중교통 이용객도 크게 줄었다. 그야말로 꼭 활동해야 하는 필수 인력만 오가는 모양새다. 마스크로 중무장한 채 사람 접촉을 피하면서. 그래서 번다(煩多)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평온을 맞이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마스크로 가린 이면의 얼굴은 긴장감이 가득해 평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런데 한산(閑散)해진 거리는 그 옛날 선현들이 읊었던 '태평연월(太平烟月)'이라는 문구를 수시로 소환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 상황은 심각하다. 지금 지구촌과 인류는 바이러스와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번진 흑사병 파동에서부터 현세의 에이즈, 최근의 사스, 메르스까지 잊어질만 하면 다시 재발하는 변형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류는 고통을 받아 왔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변종의 급습은 일곱번째로, 오래 전 예견돼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원래 코로나 바이러스는 야생 동물을 숙주로 삼아 살아간다. 인간에게 옮지 않았다. 그런데 인간들이 야생동물을 마구 잡아먹고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자신들의 숙주가 크게 줄었다. 그래서 스스로 변종으로 진화해 인간을 숙주로 삼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을 인간들이 자초했다는 것이다. 일리 있어 보인다. 인간이 아무리 과학과 의학을 발전시켜도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신(神)은 인간이 신의 정체를 파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경구가 그래서 유효하다.
혹자는 지구가 생명이 있는 유기체라는 주장과 함께 이색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인간이 너무 많이 번식한 데다 핵폭탄과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무기를 개발해 사고를 쳐대고 환경을 오염시키니 괴로워진 지구가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간들을 자연도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황당한 주장같아 보이면서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건 팩트가 있기 때문이다. 개를 키우다 겪은 일이다. 새끼를 낳은 암캐는 무더위에 키우기 버겁겠다 싶으면 새끼 몇 마리를 깔아뭉개 죽여버린다. 이런 무서운 자연도태를 목도해 본 분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일상생활이 크게 제한되고 있다. 평소 지루해 하고 답답해 하던 고요한 일상이 기실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당해봐야 안다고 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교훈의 깊이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이 혼란도 언젠가는 지나갈 테지만 평온하던 지난 시절이 그립다. 이 대목에서 조선초 선비 길재(吉再)가 고려시대를 회고하며 지은 시조 한 구절이 생각난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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