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 수성못엔 노란색 개나리 꽃망울들이 찾아오고 있다. |
산책하러 온 한 시민이 꽃망울이 트이고 있는 개나리 덤불을 지나가고 있다. 시민의 겨울 옷과 봄의 전령사 개나리가 대조된다. |
14일 지산동 용지초 울타리 사이사이로 노란 개나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14일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수성못 산책로, 개나리가 하나둘 꽃망울을 틔우고 있었다. 산책하던 한 시민은 "겨울을 뚫고 네가 피어났구나"라고 말하며 흐뭇하게 웃는가하면, 개나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인근 수성구 지산동에 위치한 용지초교 담장에도 개나리는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학교 울타리를 뚫고 나온 개나리 가지엔 노란 꽃망울들이 달려있었다.
1월 중순인데도 대구지역에 봄의 전령사 개나리가 찾아왔다. 개나리는 일반적으로 3~4월 중 개화해, 5월쯤 진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만든 이 같은 이상기후가 지속되면 지역에도 여러가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개나리가 때 일찍 찾아온 것은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면서다. 이번 겨울 들어, 대구지역 기온은 평년 수치를 훌쩍 뛰어 넘었으며 1월 일 최고·최저기온 최고값은 역대 최고를 경신한 바 있다. 기상청 관측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1월 1~18일 대구 일평균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8년 0.4℃였던 평균은 지난해엔 1.1℃로 올랐고, 올해엔 무려 2.7℃까지 상승했다. 1월 대구 일평균 최고기온도 마찬가지. 2018년 4.9℃에 불과했던 일최고기온(1월 1일~18일)은 지난해엔 6.4℃, 올해는 7.9℃까지 치솟았다.
19일 대구지방기상청도 최소한 다음달 중순까지는 이 같은 기온과 강수량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구기상청 관계자는 "다음달 3일에서 9일까지 등 일시적으로 북쪽 찬 공기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떨어질 때는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기온 분포를 보일 것"이라 예측했다. 또 "겨울철 강수량은 기온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며 "이 역시 평년보다 많을 확률이 높다"고 봤다.
시민들은 개나리 소식에 반가워하고 있다. 이혜리씨(여·35·수성구 지산동)는 "일찍 찾아온 감은 있지만, 칙칙한 겨울에 동네에 봄의 상징인 꽃이 찾아와 마음 만큼은 환해지는 듯하다"고 전했다. 매일 오전 수성못 둘레를 걷는다는 임모씨(70)도 "오늘은 얼만큼 꽃이 트였을지 매일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때이른 개나리 개화 소식이 반갑지 않다. 따뜻한 기온으로 인해 일찍 싹을 틔운 나무와 개화한 꽃들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는데다 배 등 과수나무의 경우엔 겨울철 고온에 영향을 받아 농민들에게도 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해동 계명대 교수(지구환경학)는 "차라리 따뜻한 날씨가 쭉 이어지면 덜하겠지만, 간간이 찾아오는 추위로 인해, 이미 맺힌 꽃망울이 얼어 죽게 된다. 그러면 농작물, 특히 과수에는 치명타가 찾아온다"라며 "농업은 겨울철 고온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야다. 여름철 고온은 양질의 과일이 나오지 않는데 그치지만, 겨울철 고온은 아예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또 이렇게 언 꽃망울로 인해서 곤충들도 활동을 못하고, 이 곤충들을 잡아먹는 새들도 문제가 생기는 등 생태계 사이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계대욱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이러한 기후위기는 열섬현상이 심화되거나 잦은 태풍 발생 등 일상 생활에도 큰 타격을 주겠지만, 멀리 봐선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현상이 향후에도 지속될 지의 여부에 대해선, 각자 다른 의견을 보이고 있다. 대구기상청 관계자는 "이 같은 날씨 패턴이 향후 쭉 이어질 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김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사실상 한반도에도 겨울이 없어질 것"이라며 "2045년이 넘어가면 겨울 온도는 3℃ 이상, 2070년대 이후가 되면 5℃ 이상 높아질 것"으로 바라봤다.
글·사진=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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