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싹쓸이의 그림자

  • 김신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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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6   |  발행일 2019-12-16 제31면   |  수정 2019-12-16
[월요칼럼] 싹쓸이의 그림자
김신곤 논설위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구경북에선 또 다시 싹쓸이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조국 사태와 울산시장 하명수사, 내리막길로 치닫는 경제, 남북미 이상기류 등의 문제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정권에 대한 지역민들의 민심이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 대구경북에서 당선된 여당 국회의원들의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특히 중량급 야당 인사들의 지역방문이 잦다. TK에 의탁하면 쉽게 국회의원 자리를 하나 꿰차고 정치위상을 높일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서다. 지역에도 출마 예상자들이 러시를 이루면서 한국당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TK의원들이 대대적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 영향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경북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 현 정권의 실정(失政)을 보면 당장 감정적인 심판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한국당의 행태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통합은 제자리 걸음이고, 친박·비박 간 당내 갈등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분열과 자해(自害)의 정치로 총선에서 승리하고, 정권을 찾을 수 있을지 회의감이 높다. 정치권의 이전투구와 판세변화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선택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역사를 보면 중대한 선택의 기로엔 명분이 먼저냐, 실리가 먼저냐가 항상 논쟁거리였다.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실리를 추구한 측이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도움이 된 사례가 많았음을 보여준다. 대구경북 또한 경험칙을 외면해선 이익보단 손해가 많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감정과 명분, 연고주의에 치우친 선택은 홀대와 고립과 희생양을 자초했다. 이성적인 판단과 실용적인 결정만이 최소한 균등한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에 대구경북이 가야할 길은 싹쓸이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다. ‘수구 꼴통’이라는 낙인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망령을 벗어나야 한다.

싹쓸이는 TK를 정치적 외딴 섬으로 전락시켰다. 눈을 조금만 밖으로 돌려보면 정치성향은 다양할수록, 경쟁은 치열할수록 실보다 득이 많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여야의 승패가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되는 서울과 인천이 그렇고, 같은 영남권인 부산 경남이 그렇다. 이들 지역의 정치·경제·사회적 역동성은 대구보다 훨씬 활발하다. 대구경북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물갈이 대상이 되는 것도 싹쓸이의 부메랑이다. 특정 정서에 기생하는 당 수뇌부들이 대구경북은 마구 칼질을 해도 된다고 깔보는 것이다. 자꾸 몰표를 주니까 정치인들이 열심히 하지 않고, 공천 때마다 학살 표적이 된다.

싹쓸이의 관행은 일당독점의 정치구조와 수구의 색채를 더욱 짙게 덧칠하고 있다. 이런 왜곡된 정치구도에선 대선주자를 키울 수 없다. 온실 안의 나무는 결코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다. 훌륭한 지도자는 험준한 정치 지형에서만 탄생한다. 대구경북이 온실 역할만 되풀이할 땐 나약한 정치인과 지역현안엔 무관심한 서울 TK만 양산할 뿐이다. TK가 지난 세월동안 균형과 경쟁의 정치문화를 꽃피웠다면 이런 자해적 정치상황까진 이르지 않았다. 누구를 편드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이익을 위해 거시적인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구경북이 탄핵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한 개혁보수의 확장성과 보수통합은 요원해진다. 지지를 받지도 못한다. 탄핵과정의 시시비비는 이제 접어둬야 할 때다. 총선 이후에 따지거나 역사에 맡기면 된다. 얼마 전 곽상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당시 정권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인적 책임을 분명히 하고, 탄핵의 꼬리표를 뗀 뒤 새 출발하자는 주문이다. 특정 사안에 계속 집착하면 병리적 현상만 연출할 뿐이다. 국민들은 지금 교조주의적 진보와 수구적 보수, 정파적 극단 대립에 강한 환멸을 느끼고 있다. 대구경북이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의연하고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구경북이 변하면 우리나라 정치가 바뀐다. 많은 국민이 합리적인 진보와 개혁적인 보수가 공존·상생하는 사회를 갈망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어렵게 형성되어 가는 경쟁적 정치구도를 살려 나가야 한다.

김신곤 논설위원 sing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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