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서 신라시대 토지운영·조세제도 기록한 목간 출토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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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0 07:10  |  수정 2019-12-10 07:10  |  발행일 2019-12-10 제9면
소월리 유적의 수혈 유구서 발견
수도 경주 아닌 지역 ‘학계 주목’
길이는 74.2㎝ 육면에 글씨 새겨
“신라 행정체계 파악 귀중한 사료”
경산서 신라시대 토지운영·조세제도 기록한 목간 출토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 A면 적외선 세부 글씨(왼쪽)와 육면 목간 적외선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신라 ‘수도’ 경주가 아닌 ‘지방’ 경산에서 6세기 신라인이 토지 운영과 조세 제도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경산 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구간인 경산 와촌면 소월리 유적의 수혈(竪穴·구덩이) 유구(遺構) 뻘층에서 삼면에 얼굴 모양을 표현한 토기(영남일보 12월4일자 10면 보도)와 함께 신라시대 토지 관련 목간을 찾아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발굴 조사는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화랑문화재연구원이 수행하고 있다.

목간의 길이는 74.2㎝이며, 육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서체나 내용을 근거로 6세기 유물로 짐작됐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1차 판독 작업을 진행해 글자 94자를 확인했다. 여섯 면 중 두 면은 동일한 글자가 나와 글씨를 연습한 흔적으로 추정됐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무관은 “6세기에 경산 인근 토지 현황을 적은 토지관리 문서 목간일 가능성이 크다”며 “글자의 양이나 글씨 연습 흔적을 보면 현대 업무수첩과 같은 예비문서나 기초문서로, 이후에 정식 문서를 작성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목간 A면에는 ‘부감말곡답칠(?)□제상일결 구미곡삼결 제하부(負甘末谷畓七(?)□堤上一結 仇彌谷三結 堤下負)’라는 글자가 있으며, 다른 면에도 숫자와 ‘논 답(畓)’ ‘밭 전(田)’자 등이 새겨져 있다. 연구소는 그중 답(畓), 골 곡(谷), 방죽 제(堤) 글자와 조세 부과 단위인 결(結)·부(負) 자에 주목했다. 전 주무관은 “곡은 일정한 집단 혹은 마을을 지칭하는 글자이며, 전체적으로는 둑을 쌓아 논을 조성했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그 주변에 논과 저수지를 만든 뒤 이에 대해 세금을 수취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답(畓)·결(結)·부(負) 자는 언어학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목간 작성 시기를 추측하는 데에도 단서가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우리나라 고유 한자인 답(畓)은 561년에 건립한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에 처음 나온다고 알려졌는데, 경산 목간도 6세기 중엽 전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결부법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인 7세기에 사용했다고 전해졌으나, 경산 목간으로 인해 시행 시기를 올려 잡을 수 있게 됐다”고 연구소는 강조했다. ‘결’과 ‘부’는 모두 토지 면적 단위로, 154㎡인 부를 100개 합치면 한 결이 된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곡은 고구려에서 광역의 행정단위였는데, 신라는 좁은 면적의 취락에도 사용한 듯하다”며 “6세기에 중앙에서 나온 지방 행정관이 생산력을 높이고 세금 수취를 추진하기 위해 쓴 것 같다. 신라 지방행정체계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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