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학의 박물관에서 무릎을 치다] 日 교토 ‘학교역사박물관’·‘대구교육박물관’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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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2   |  발행일 2019-11-22 제38면   |  수정 2020-09-08
폐교에서 되살아난 학교…추억과 꿈 향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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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교토 학교역사박물관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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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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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삽화와 1875년에 만들어진 나무계단으로 꾸며진 박물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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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실로 꾸며진 전시장.

어린시절 다녔던 학교가 폐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구나 묘한 허탈감에 빠져든다.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랐던 마음이 상처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시대의 폐교는 창작의 산실이 되거나 다시 배움의 집이 되기도 하고, 혹은 마을의 명소로 꾸며져 지역의 자원도 살리면서 마침내 지역민의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폐교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쉽지 않다. 오늘은 박물관으로 반듯하게 되살아난 두 학교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꿈의 공간으로 변해갈 폐교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日 교토 ‘학교역사박물관’


메이지시대 초기 민간에서 세운 학교
교육에 대한 열정·애정 고스란히 남아
소방망루·시간 알림 북, 주민 삶 밀착
문명 개화·산업·급식 등 1만점 자료
음악 수업 처음 시작한 도시 자부심


일본의 역사와 전통문화의 아이콘이 된 도시 교토. 이런 교토에서 꼭꼭 숨은 작은 박물관을 찾아가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그 중에서도 교토시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학교역사박물관’에는 교육에 대한 교토시민의 애정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1998년 11월 ‘학교에서 교토를 배운다’는 슬로건 아래, 교토에서 가장 오랜 129년 역사의 카이치(開智)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생긴 전국 유일의 학교역사 박물관이다.

올해는 메이지 정부가 학제를 공포하기 3년 전 교토에서 전국 최초의 학구제 초등학교가 탄생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메이지(明治)시대의 여러가지 근대화 정책 중에서도 특히 ‘교육’에 온 힘을 썼다는 걸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바로 여기다. 당시의 교토시민들은 교토를 다시 세우려면 좋은 인재를 기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빚을 얻어서까지 돈을 모아 64개의 초등학교를 만들어 지역 단위로 관리 운영을 한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메이지 시대 초기에 민간에서 학교를 세운 사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결심이었다.

1901년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정문을 들어서서 운동장을 지나면, 전시실 입구에서 어느 초등학교에서 옮겨온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1875년작 현관을 만나게 된다. 그 옆에는 일본 초등학교 동상의 상징적인 존재인 니노미야 긴지로의 석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땔감나무를 짊어지고 책을 읽으며 걷고 있는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도 도덕시간에 늘 등장한 본받아야 할 인물이었다. 21세기의 일본에서도 그는 여전히 중요한 교육적 가치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의 소방망루와 시간을 알려주는 북은 당시의 학교가 아이들의 배움터에 그치지 않고 마을 중심의 종합시설로 지역민의 삶과 밀착된 곳이었음을 알려준다. 어쩌면 이 박물관은 학교의 바른 역할을 반추하는 이정표일지도 모르겠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역사지만, 학교의 개교에 힘쓴 사람 대부분이 지역 인사였기 때문에 그들의 남다른 열정을 알리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았다.

크고 작은 13개의 전시공간에는 다른 박물관에서는 보기 힘든 1만여 점의 귀한 자료가 시민의 열정, 문명개화와 학교 교육, 전통 산업과 학교 교육, 학교 급식의 발자취, 근대 교토의 목조교실 등으로 나뉘어 빼곡하게 소개되어 있다.

교과서 전시실에서는 메이지시대에서 태평양전쟁까지의 교과서를 만난다. 전차와 군함 등도 다룬 전쟁기 교과서와 패전 후 군국주의적 내용이 먹칠된 묵칠 교과서도 원래 상태의 교과서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교육 내용은 에도시대의 서당(寺子屋)을 따랐지만, 개교 당시 서양화 때문에 일본화의 장래에 위기감을 느낀 교토의 화가들이 일본화 미술교과서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는 감동적인 사연도 전해 들었다. 당시 음악 교육을 위해서 마련한 명기(名器) ‘스타인웨이 피아노’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피아노 아래서 잠든 선생님도 있었을 정도로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다는 얘기는 ‘일본에서 음악수업을 맨 처음 시작한 도시’라는 명성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언뜻 보면 진부하고, 남루하다 싶은 이곳을 교토시민들이 고향집처럼 찾아오는 까닭 또한 저절로 알 수 있는 곳이다.

▨ 일본 교토 학교역사박물관 www.kyo-gakurehaku.jp.

‘대구교육박물관’

영남권 최초 교육박물관, 전국 주목
기증캠페인 통한 자료 2만여점 소장
일제 강점기에 쓴 경북여고생 일기장
다채로운 기획전…감동 스토리 선사
교육과 연관 추억 매개…세대간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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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육박물관 내 2·28학생운동 기념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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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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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입구의 대구교육역사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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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체험실에서 활동하는 어린이들.

1981년에 개교해서 학령인구 감소로 36년 만에 통폐합된 대동초등학교 자리에 2018년 6월 대구교육박물관이 들어섰다. 대구교육박물관이 그 탄생을 예고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존재를 매우 추상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전한밭교육박물관, 제주교육박물관에 이은 ‘20년 만의 교육박물관’ ‘영남권 최초의 교육박물관’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으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교육박물관을 세우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교육청 산하기관으로 7개의 전시실, 5개의 체험공간을 가진 ‘디지로그 박물관’ ‘마인즈 온(Minds-on) 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다.

교육청을 중심으로 2년 동안 기증유물을 모으고, ‘역사를 전하는 보람 있는 나눔’이라는 기증캠페인을 통해 현재 110명의 기증자료 2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연경서원의 출석부라고 할 수 있는 ‘통강록’, 서포 김만중 선생의 평론집인 ‘서포만필’ 필사본, 송촌 지석영 선생이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영어교재 ‘아학편’, 일제강점기인 1937년 경북여고 2학년 여학생이 11개월 동안 일본어로 쓴 일기장으로 ‘한국판 안네의 일기’라 불리는 ‘여학생일기’ 등이 대표적인 유물로 상설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예전의 박물관이 얼마나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고 전시하느냐에 따라 그 명성이 좌우되었다면, 이제 박물관은 어떤 이야기와 주제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2·28학생운동의 발상지, 특수교육의 요람, 한국전쟁기의 대구교육 등 교육수도 대구의 가슴 벅찬 역사를 보고 있으면,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 구본신참(舊本新參) 이런 말들은 이제 더 이상 박물관을 고고학의 이름으로 붙들어두지 못할 것이다. 새 것을 알고, 창조하고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고현학(考現學)에 가깝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다.

대구교육박물관은 짧은 기간 다채로운 기획전으로 ‘살아있음’을 전해왔다. 개관특별전 ‘대구피란학교, 전쟁 속의 아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서 피란 온 학생을 위해 개교한 ‘서울피란 대구연합중고등학교’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발굴해 알렸고, 두 번째는 유네스코가 정한 음악창의도시로 매년 다양한 음악축제가 열리는 대구의 문화정체성을 알려주는 기획전 ‘스테이지(Stage)’를 마련했으며, 세 번째는 구한말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영어교육이 이뤄졌는지 다양한 유물과 함께 보여주는 ‘영어, 가깝고도 먼’이라는 제목의 ‘영어역사전시회’였다.

지금도 토종씨앗의 이야기를 인문학적으로 전하는 ‘토종씨앗, 밥상을 부탁해’가 열리고 있으며, 올 연말에는 ‘놀이의 역사’로 관람객을 피터팬으로 만드는 ‘우리들의 네버랜드’라는 기획전을 준비 중이다.

박물관이 ‘대중교육시대’의 주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기성세대의 기증 유물을 통해 부모가 멋진 도슨트가 되고, 부모의 경험치를 교육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 바로 교육박물관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개관 첫해에 7만여명이 찾은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교육에 연관된 사회자원으로 추억을 매개로 방문자 세대 간의 소통이 가능해 ‘소통의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한 교육박물관은 지난 가을부터 문화관(203석)과 체험관이 문을 열면서 더욱 다양하고, 의미 있는 박물관이 되어가고 있다.

▨ 대구교육박물관 www.dge.go.kr/dme
대구교육박물관장
사진=김선국 사진가

시각장애인 세계 문화유산 체험
미니어처 만져보며 점자해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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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육박물관 특수교육실내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체험코너.
첨단서비스를 갖춘 박물관들도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대부분 점자 해설판이 고작이다. ‘역사에 눈뜨는 기회’를 만들자는 대구교육박물관의 생각은 ‘장애를 넘어, 균형을 위한 배려’가 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석굴암 본존불, 에펠탑, 피사의 사탑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국내외 40여 종의 유물유적 미니어처를 직접 만져볼 수 있게 가성비 높은 기념품을 구하느라 애쓴 결과다.

대구대 점자도서관에서 점역(點譯)해 준 점자해설을 읽으면서 10명이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접이식 체험카트에서 동행한 부모가 체험을 유도하고, 직접 도슨트가 되는 장면은 교육박물관의 분명한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 대구교육박물관은 앞으로 관련 음악 등 콘텐츠의 융합을 통해 관람객들이 복합적인 체험효과도 누릴수 있도록 하고, 3D 프린트를 이용한 추가미니어처도 제작해 ‘찾아가는 박물관’으로도 함께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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