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단풍 명소 치악산 구룡사·둘레길 3코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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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2   |  발행일 2019-11-22 제37면   |  수정 2020-09-08
만산홍엽 구룡계곡에서 천천히 울리는 범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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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로 가는 트레킹 로드에서 본 수려한 가을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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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너미재로 가는 길 잣나무 숲의 신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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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구룡사의 대웅전과 가을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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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사 입구 은행나무의 노란 은행잎.

가을이 오면 무슨 약속처럼 열병을 앓는다. 단풍의 천연염색이 신비하다. 울긋불긋한 오색으로 단장한 숲은 그 자체가 환희다. 단풍이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한 치악산 구룡계곡과 구룡사로 걷는다. 구룡사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 화석나무의 노란 잎들이 팔랑이는 환상에 끌려 걷는다. 치악산 국립공원은 우리 국토 등줄기인 태백산맥 중서(中西) 쪽에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1천288m)을 중심으로 구룡사계곡과 우거진 숲이 어우러져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가을이 물든 단풍숲, 수려한 신의 솜씨
바람 일면 은행잎은 노란나비로 변신
개명전 부른 단풍이 아름다운 적악산
아홉마리 용이 살던 못에 지은 구룡사
깊고 맑은 계류수에 비쳐오는 오색빛
천혜의 경관·생태·역사 명품 여행길


예부터 수도(修道)의 명산(名山)으로 알려졌고, 1984년 12월3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매표소를 지나 걷는 데크길은 계곡에 이빨을 물고 있다. 맑은 계류수와 우뚝우뚝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와 어우러진 단풍들의 숲이 영락없는 신의 솜씨다. 황장금표를 지난다. 조선조 궁궐을 지을 때 쓰던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백성이 벌목하는 것을 금지한 표시다. 황장목은 나무가 누런색깔을 띠며 질이 단단한 목재다. 치악산 황장목은 질이 좋고 강원감영이 가깝고, 베어낸 황장목으로 뗏목을 만들어 섬강과 남한강을 거쳐 한양으로 운송하기 편리해 황장봉산에서도 이름이 났었다.

그 수려한 숲에 무엇이 있을까. 저 단풍 숲 어딘가에 있을 나를 찾아본다. 나를 지나간 가을들이, 지금은 멀리 있는 그 추억의 단풍들이 시나브로 떠오른다. 그리고 가버린 것들과 현재가 한줄기 강이 되어 나의 내면으로 흘러간다. 이미 시간 속에서 덧없는 허무처럼, 스산한 가을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낙엽처럼, 나는 나를 이끌어가는 어떤 힘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무와 가지들로 하여금 그날, 만산홍엽의 희열을 택배하는 당신이 계신 곳은 어디입니까. 이러한 의문이 반복되는 구룡계곡에서 범종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내가 걷고 있는 동안 내내 당신은 보일 듯 말 듯, 들릴 듯 말 듯. 수수께끼 속에 숨은 전설의 도깨비처럼. 이리저리 나를 궁굴리기도 한다. 그 단풍 빛에 물들고 낙엽들이 멱을 감는 계류수가 한때 사랑이라고 했던 첫날의 언어와 함께 시부저기 흘러가고, 그 망 없는 착각들이 훅하고 사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이 있는 숲에 나도 있고, 우리는 하나의 숲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그 처절한 단풍이 무시로 하트를 만들든 그날. 바로 나는 한그루 나무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시간이, 시간처럼 흘러가는 물이 고인, 곰비임비 물처럼 고인 시간이.

그렇게 단풍의 시(詩)를 영혼에 적어놓고 흘러가리란 것을 알고서 한그루 나무가 되었다. 그 시간이 곡예를 부려 나를 낭송시처럼 허공에 당신의 소리로 흩어놓고 가리란 것을 알고서 또다시 한그루 나무가 되었다. 갑자기 사바나처럼, 시야가 툭 터지면서 어마지두 구룡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노란 부채 살 같은 은행나무가 보인다. 노란 은행잎이 모자이크처럼 디자인된 공간에 숨이 턱 막힌다. 정말 아름답다. 슬쩍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은 노란 나비가 되고 나의 망막에도 노란 파문이 인다.

가슴에 지식을 품고있는 눈에는 그게 그냥 단풍이겠지만, 가장 낮은 나에게 내려와 나의 영혼을 흠뻑 적시는 저 은행잎은 살아있는 신의 춤사위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눈꺼풀이 떨리며, 나의 내면에서 점화된 에너지가 감정에 불을 활활 지필 수 있겠는가. 공룡이 있었던 때부터 있었던 나무라고 해서 화석나무라 부르는 은행나무. 진짜 예쁘네.

구룡사로 간다. 기하학적으로 배열된 돌담이 식빵처럼 군침을 돋운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6년(서기 666)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이곳은 당시 아홉 마리 용이 살던 깊은 못이었다. 의상대사가 그 아홉 마리 용을 후들까내고 절을 지어 구룡사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구룡사는 산비탈 언덕에 있다.

이 터를 보고는 문득 프랑스의 ‘순교자의 언덕’ 몽마르트르와 생드니 성당이 떠올랐다. 서기 250년경, 드니(Denis)가 파리에 주교로 파견되었다. 그렇지만 드니는 이교(異敎)를 믿는 주민들의 반발로 당시 지배국인 로마관리에게 체포되고 모진 고문 끝에 참수되었다. 그가 순교한 몽스 마르티스(순교자의 언덕)는 후일 몽마르트르라 부르게 된다. 이때 드니는 놀라운 권능을 보였다. 자신의 잘린 머리를 손으로 받쳐 들고 그렇게 몽마르트르 언덕을 넘어 파리 북쪽 외곽까지 먼길을 걸어가 쓰러졌다. 그 쓰러진 곳이 현재의 생드니 성당 자리다. 이건 놀라운 기적이고 사실이다.

나는 의상대사를 생각하고 대사의 법성게(法性偈)가 드니의 놀라운 권능처럼 생각되었다. 대사의 법성게는 마치 드니가 잘린 머리를 받쳐 들고 먼길을 간 것처럼, 그렇게 인간의 착각과 마성을 잘라 받쳐 들고 인성 회복의 먼길을 걸어간 기적의 법어, 뫼비우스의 게송(偈頌)이다. 경내를 둘러보다가 대웅전 주련에 눈을 크게 뜬다. 달마하사답강래(達磨何事踏江來 : 달마가 무슨 일로 강을 밟고 왔는가), 동토산야춘초록(東土山野春草綠 : 동토의 산과 들이 봄빛에 푸르기 때문이다). 달마가 강을 밟고 온 것도 산과 들에 봄빛이 푸른 것도 기적이고 사실이다.

돌아나오면서 부도 밭을 들어가 본다. 몸과 우주를 태워 작은 구슬로 만들어 버리고, 그의 뼈에 별과 달빛을 새긴 승려들의 일생(一生)이 돌 속에서 사리로 반짝이고 있다. 다시 들머리로 나간다. 단풍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적악산이라 부르다가 상원사 꿩의 보은(報恩) 설화로 치악산으로 개명된다. 그럼에도 황홀한 단풍, 그 절경에 풍덩 빠지고 만다. 깊고 맑은 계류수에 비쳐오는 오색 단풍은 더욱 타오르며, 오오 탄성을 지르게 한다.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는 울창한 성황림은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됐다.

이렇게 당신을 느낄 수 있는 숲길은 나의 영혼에 활기를 주는 수액주사다. 조금 전 지나간 길이 전혀 낯설고 숲은 새로운 환상으로 자리를 편다. 바람이 분다. 잎들이 날면서 떨어진다. 언제나 목마른 나의 감정들이 수근거린다. 그 참에 낙엽들은 또 그의 혀로 발자국 소리를 만든다. “너는 듣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그리고 나는 당신의 팔에 안긴 숲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당신의 긴팔이 나까지 안아버리자 삶은 한낱 순식간에 사라지는 산안개라는 걸 알았다. 그럭저럭 매표소로 돌아왔다. 이제 둘레길 제3코스로 가야 한다.

‘치악산 둘레길은 역사와 문화, 천혜의 자연경관과 생태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명품 도보 여행길입니다.’ 원주시의 소개다. 그 중 지금 걷고 있는 수레너미길은, 원주 소초면 학곡리 한다리골에서 횡성군 안흥면(안흥진빵으로 유명)의 강림리까지 연결해주는 옛길이다.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그의 스승 운곡 원천석을 만나기 위해 수레를 타고 넘었다고 한다. 이 길은 치악산 능선의 매화산과 천지봉 사이를 넘게 되는데, 고개 정상은 수레너미재라 불린다.

언제나 처음처럼 숲길은 우리가 찾던 정신이었다. 만일 그것이 많은 갈등에 의해 숨어버린 수줍은 정신일지라도 숲에서 꺼내어 뒤집어 보면, 그것은 숨찬 감동을 일으키는 유의미한 정신이었다. 숲길은 그것이 어떠한 모습을 가지든 우리가 찾던 그 정신이 되었다. 그러구러 잣나무 숲에 도착했다. 넘어져 있는 아지 따기 한 고목에 앉았다. 잣나무 숲의 그늘과 향기, 누구였든가. 혼자서 싸목싸목 걸어가는 그녀를 잡는 망이 되고 싶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11월 숲의 오후에 그곳에서 곧 사라질 것 같은 어뜩어뜩한 그림자와 그녀를 망으로 건져내면 꼭 당신이 나타나서 그 긴팔로 나를 다시 한번 안을 것만 같았다.

시인·대구힐링트레킹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 문의: 치악산 국립공원 사무소(033)740-9900.
▲ 내비 주소: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무쇠점 2길 26.
▲ 트레킹 코스: 치악산 국립공원 사무소~매표소~구룡사~매표소~제3코스로 이동~잣나무 숲.
▲ 주위 볼거리: △ 강원 감영 △상원사 △영원 산성 △간현 관광지 △미륵불상 △용소막 성당 △비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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