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황새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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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2   |  발행일 2019-11-22 제23면   |  수정 2019-11-22

어릴 적에 황새는 가장 익숙한 새였다. 주변에 황새가 많기도 했다. 황새는 방안 벽 한 쪽을 가리고 있는 횃댓보에도, 걸려 있는 액자에도, 자개농에도, 집앞 들판의 논에도 있었다. 횃댓보와 액자의 황새는 어머니가 수를 놓아 혼수로 가져 온 것일 터다. 젊은 부모님은 살림이 약간 펴지자 자개농을 사들이신 것 같다. 검은색 바탕의 자개농에는 여닫이 문마다 고개를 쳐든 수컷과 그 앞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암컷 황새 커플이 조개껍질로 그려져 있었다. 단 한 쌍이 남아있던 황새 부부 중 수컷이 1971년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안 뒤로 논에 있던 황새는 그게 정말 황새였는지 자신이 없다. 아마 다리가 길고 키가 큰 새, 왜가리나 백로, 아니면 다른 새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린 우리는 논에서 우렁이나 미꾸라지 등을 잡아 먹는 키 큰 새를 그냥 황새라고 불렀다. 밀렵꾼의 총을 맞지 않은 암컷은 서울대공원에서 보호를 받다가 1994년 죽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텃새 황새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철새 황새는 러시아나 중국·일본 등에서 겨울에 날아든다. 근년 들어 이 철새 황새들이 우리나라가 방사한 개체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이 목격돼 황새 생태 복원에 자신감을 주고 있다. 황새는 늘씬한 키에 균형 잡힌 몸매, 수려한 자태가 미인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긴 목은 서 있을 때나 날 때나 거의 굽히지 않는다. 이런 황새가 안타깝게도 목소리는 내지 못한다. 대신 큰 부리를 부딪혀 소리를 낸다. 그러자니 다른 새에 비해 말 수가 적을 수밖에.

유시민이 정경심 공소장을 ‘황새식 공소장’으로 비유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더할 수 없는 모욕이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한 쪽 진영으로 치우친 듯해 그동안 그에게 가졌던 믿음과 느꼈던 공감이 사그라드는 기분이다. 북한 선원 강제 북송 비난에 대해 “그렇게 받고 싶으면 자기 집에 방 하나 내주고 받으면 될 일”이라고 말한 데서는 공인의 말이 맞나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황새가 부리를 부딪혀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은 성대는 퇴화해 없지만 청각은 예민하기에 가능하다. 겨울을 맞아 한반도를 찾았다가 뜬금없이 검찰 모욕용으로 소환당한 황새는 유시민의 표현에 어떻게 반응할까? 말 못하는 점잖은 체면에 그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며 딱!딱!딱! 답답한 가슴을 달랠까?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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