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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자인다방 미스 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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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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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봐줄 거야?” 친구들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아직 이른 줄 알지만 아동 관련 끔찍한 뉴스얘기가 그만 손주 얘기로 흘러가버렸다. 친구들 모두는 “절대로 애는 봐주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유는 자기 인생을 즐기고 싶고 건강도 자신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딱 한사람, 나만 아이를 봐 주겠다 했다. 친구들은 아연실색했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인 네가, 명절에 뻔뻔하게 해외여행을, 그것도 혼자 가는 네가, 가족을 위해 뭘 한다고?

나는 일하는 엄마의 마음을 안다. 아이를 맡길 곳 없어 발을 구른 경험 때문인지 내 딸에게 다른 건 몰라도 양육의 공포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물론 나는 양가 부모님이 아이를 번갈아 봐준 대한민국 1%의 혜택을 누렸다. 그럼에도 단 하루, 단풍놀이를 양가가 하필이면 동시에 가는 바람에 나와 아이는 길에 버려졌다고 느껴질 만큼 그날은 암담했다.

갑자기 떨어진 취재명령. 육아를 하다 일터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 “애 봐줄 사람 없어 못 간다”는 말은 “나는 무능해요”라는 뜻으로 당시엔 통했다. ‘아이 있는 여자도 일 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를 안고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이 아이를 업고 들어갈 수도 없고, 정말 뱃속에 다시 넣고 싶은 딱 그 심정이었다. 날씨는 무심할 정도로 화창했다. 올려본 하늘은 할리우드 그래픽 효과 뺨치게 빙글빙글 돌았다. 현기증을 느낀 것도 잠시, 내 앞에 간판이 하나 보였다. ‘자인다방’.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차저차 사정이 이래서 잠깐만 봐주면 돌아오겠다. 터미네이터도 아닌 주제에 ‘I will be back’을 외쳤더니 누가 아이를 내 품에서 떼어 덥석 안아갔다.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기 좋아하는 미스 김이 놀아줘래이.”

덕분에 나는 그날의 일을 마쳤고 미스 김에게 고맙다고 연신 절을 하고는 아이를 찾아왔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엄마는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애를 맡겼다고 내 등짝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나는 더 소리를 질렀다. “애 봐준다면서 단풍놀이는 왜 가는데?”

그런 악다구니를 몇 번 겪어야 일하는 엄마의 아이는 자란다. 당시엔 참 주변머리가 없어 자인다방 미스 김을 다시 찾아갈 생각도, 고맙다는 전화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날 이후로 누군가의 다급함을 알아차리는 일이 얼마나 결정적 도움인지 알게 됐다. 필요하다면 자인다방 미스 김처럼 아이를 덥석 안아주고자 한다. 다리 힘을 기르기 위해 하루 만보 걷기도 하고 아픈 허리도 미리 낫게 하려고 요가도 열심히 한다. 터미네이터의 근육질 할머니 린다 해밀턴만 미래를 지키는 건 아니다. 세상이 아이를 키우기 좋도록 크게 변하지 않으니 개인이 제 삶의 영역에서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남자들은 모른다. 공포를 안은 모성이 당신 옆에 있다는 것을.

서상희 (크레텍책임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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