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참여정부만큼만이라도

  • 김신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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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1   |  발행일 2019-11-11 제31면   |  수정 2019-11-11
[월요칼럼] 참여정부만큼만이라도
김신곤 논설위원

누군가가 앞길을 닦아놓으면 그 뒤를 가는 사람은 매우 수월하다. 전임자가 미래의 방향타(方向舵)를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후임자는 전임자의 설계안을 실천만 해도 기본은 하는 것이다. 후임자가 창의적 발상으로 진일보한 업적을 남긴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하지만 후임자가 전임자의 길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전임자의 업적을 깔아뭉개려는 의도가 있거나, 관심과 실행력이 없을 때 그렇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문재인정부의 지방정책이 그럴듯한 이유 없이 마냥 지연되는 것이 안타까워서이다. 현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을 더욱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런 기개와 장담은 지금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실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정부의 정신을 폐기한 것일까, 아니면 실행의지를 상실해서일까.

참여정부의 지방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균형발전을 통해 모든 지역이 혁신역량을 갖춘 다핵 창조형 선진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전 국토의 동반성장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고, 국토 전체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높이자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2004년부터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폈다. 세종특별자치시를 만들어 중앙 행정기관을 옮겼다. 전국 10개 지역 혁신도시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특별법으로 154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결정했다. 수도권 옹호론자들의 극심한 저항을 이겨냈다. 그 결과, 전국으로 분산된 혁신도시는 지방세 수입과 지방대생 취업증가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사회적 효과는 증대될 것이다.

현 정부는 참여정부의 지방정책을 잇기만 하면 된다. 가는 길이 어렵지 않음에도 현 정부의 지방정책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혁신도시 시즌 2’인 122개 공공기관 2차 이전방안조차 아직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지방소비세율을 올리면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규모를 대폭 줄여 재정분권을 역행하고 있다. 지방의 숙원인 지방이양일괄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 자치경찰제 관련 법안 등은 국회에서 잠재우고 있다. 약 120조원의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수도권에만 허용하고 3기 신도시와 수도권 급행철도 건설을 결정했다.

대선 때 많은 비(非)수도권 유권자들이 문 후보를 찍은 것은 지방정책을 재가동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임기 절반을 넘어선 시점까지 문 대통령에게서 지방정책에 대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찾지 못하면서 많은 지역민들이 회의감에 빠져들고 있다. 참여정부의 계승자인 현 정부가 과거 정권 못지않게 균형발전 역행정책에 전념한다는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수도권 집값이 잡히지 않는 것도 지방정책을 소홀히 한 결과다. 수도권은 이미 전국 인구의 절반이상이 모여 살고 지역내총생산이 50%를 넘은지 오래다. 수도권 집값을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지방에 공공기관과 대기업들이 골고루 산재해 있다면 사람들이 굳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정책을 쓰니까 전 국토가 기형적으로 발전하고, 지방대학과 지방경제가 퇴락한다.

더 늦기 전에 수도권의 나머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고,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 참여정부 정신의 실행은 정부와 여당의 의지 문제다. 집권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공약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하기보단 무엇인가를 결정해주고 나서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 시기를 놓치면 문 정부의 지방정책은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조국 사태와 경기침체로 현 정부의 지지율은 급락중이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어느 정권이든 임기 절반을 넘어서면 레임덕에 시달려왔다. 반환점을 넘은 현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중진국 지위를 포기하면서 농심이반이 심상찮다. 지방정책마저 실기(失機)하면 현 정권은 참담한 종말을 맞을 수 있다. 공정의 가치는 수도권과 지방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김신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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