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답은 금리인하가 아니다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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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1   |  발행일 2019-11-11 제30면   |  수정 2019-11-11
20191111
이효설 경제부기자

한국은행이 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인 한국에서 은행의 액션을 요구하는 신호다. 대출을 늘려 경기부양에 힘쓰라는 것이다. 3분기 경제성장률 0.4%, 이대로 나가면 올해 연간 성장률은 2%도 어렵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대출을 늘리면 경기가 살아난다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은행이 풀어준 돈이 제조업으로 이동해야 한다. 현실에선 이 돈이 고스란히 부동산과 가계대출로 쏠린다.

중소기업 시설 대출은 꾸준하게 늘고 있지만, 정작 설비투자는 계속 줄고 있다. 개인이 기업시설자금 명목으로 대출해 부동산으로 쏟아붓는다는 얘기다.

또 저금리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막는다. 소위 ‘좀비’ 기업이 정리가 안된다. 장사가 안되면 문을 닫아야 하는데, 대출로 돌려막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이 정리가 안되면 시장은 과잉경쟁, 공급과잉에 치닫고 결국 경기가 나빠진다. 이는 부메랑처럼 금리 하락의 요인으로 되돌아오고, 한은은 다시 금리 인하 카드를 휘두를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매년 기존 사업자수의 30%가 창업하는 현실에서 자영업이 수익을 내는 일은 더욱 요원해진다.

우리와 다르게 자본시장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는 미국을 보자. 2008년 금융위기를 호되게 치른 후 은행 대출금리를 높여 마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됐다. 실제로 미국은 2008년말부터 7년간 ‘제로 금리’ 시대를 유지했지만 그때도 은행들은 대출금리 4%대를 유지했다. 미국 은행들의 주요 지표는 높은 대출금리의 경제적 효과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해 미국 은행의 운용수익률, NIM(순이자마진)은 각각 5.27%, 3.37%로 한국의 3.13%, 2.24%보다 훨씬 양호하다.

대출금리가 높다는 것은 대출 조건이 그만큼 까다롭다는 뜻이다. 일정 수준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기업들만 대출을 내서 시작하게 하고, 우리처럼 서너 달 준비해 창업에 뛰어들겠다는 이들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창업의 나라’ 미국이라고 알려졌지만, 이는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실제로 미국에서 개인이 자영업을 한다고 하면 “You have a your own business?”(사업을 한다고요?)라며 깜짝 놀라 되묻는 미국인들이 많다. 대출에 대한 개념이 이렇게 다르다.

저금리로 인한 전세자금대출의 급증도 심각한 문제다. ‘부채도 능력’이라 떠드는 시대지만, 결코 쉽게 넘길 일은 아닐 것 같다. 한국은 세계에서 부채 리스크가 가장 큰 나라인 게 데이터로 입증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4년간 국가별 가계대출 증가율에 따르면, 한국이 8.4%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GDP대비 가계 부채 비율(2018년말)도 한국은 130%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저금리로 저성장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은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국가의 경제 신뢰도가 뭔가. 외국 입장에선 은행의 신뢰도다. 즉 부채의 리스크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외국인들은 이를 국가 부실의 중요한 징표로 이해할 것이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다. 2008년 대한민국 금융위기가 불과 1~2개월 만에 터졌다. 정부와 은행이 협력해 더이상의 버블을 만들지 않겠다는 합의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이효설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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