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16] 중국 사찰과 포대화상...불룩한 배 드러낸 채 파안대소…‘佛法 포대’ 짊어진 미륵불 화신

  • 김봉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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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31 08:04  |  수정 2021-07-06 10:27  |  발행일 2019-10-31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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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영은사 앞 비래봉에 조성된 포대화상. 이곳의 수많은 불상 조각 중 최고 걸작인 이 불상은 남송 시대에 조성됐다고 한다. 높이 3.3m, 좌우 10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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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저장성 우시(無錫)의 영산(靈山)승경구 내 영산대불 아래에 있는 포대화상 불상.

한국의 옛 산사에는 없지만, 중국 사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불상이 있다. 포대화상(布袋和尙) 불상이다. 불교에는 석가모니 부처 다음에 올 미래 부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 서서히 잊힌 후 도솔천에 있는 ‘미륵’이라는 부처가 이 세상에 나타나 불법을 다시 편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세상이 혼탁해지고 혼란스러워지면, 미륵이 내려온다는 이 신앙을 믿으며 희망을 가졌다. 포대화상은 소면화상(笑面和尙)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미륵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포대화상 불상은 미륵불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고, 후량 때 실존인물인 계차(契此) 스님의 모습이다. 그는 뚱뚱한 몸매에 불룩 나온 배를 드러낸 채, 등에는 큰 포대를 메고 항상 껄껄 웃고 다니며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미륵의 화신으로 추앙하면서, 포대화상을 묘사한 불화나 불상을 만들고 복을 비는 미륵신앙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계차 스님은 항상 등에 포대를 짊어지고 다녀 ‘포대화상’이라고 불렸다. 포대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물품들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실존인물 계차 스님 모습 형상화
대혼란기였던 5대10국시대 禪僧
사람들에 희망 줘 미륵신앙으로
사찰 곳곳서 불상 만나볼 수 있어
항저우 영은사 석굴조각 대표작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포대화상

중국 사찰을 둘러보면 이 포대화상 불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역사도 오래 되고 조각 솜씨도 뛰어난 대표적 포대화상으로,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 있는 영은사의 포대화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포대화상을 15년 만에 다시 찾아보았다.

영은사 매표소를 거쳐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글씨 편액 ‘영은사(靈隱寺)’가 걸린 일주문을 지나 조금 가면 이공지탑(理公之塔)이라는 7층 석탑이 나온다. 이 탑은 영은사를 창건(326년)한 인도 승려 혜리(惠理) 스님을 기리는 탑이다. 탑을 지나 조금 가면 왼쪽으로 작은 계곡이 흘러내린다. 계곡 오른쪽으로 난 길 옆에는 영은사가 자리하고 있고, 맞은편 계곡 건너에는 석회암으로 된 산(飛來峰·209m)의 석굴과 암벽 곳곳에 수많은 불상이 조성돼 있다. 5대(五代)부터 송·원·명에 걸쳐 470개의 불상과 보살상이 조성됐는데, 자연재해 등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380여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 중에 포대화상이 있다. 바위산을 파낸 석굴 안에 불룩한 배와 배꼽을 드러내고 파안대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고, 한 손은 팔걸이에 얹은 채 앉아 있다. 좌우에 다양한 모습의 스님 15명이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이곳의 불상 조각 중 최고 걸작이라 할 만한 이 불상은 남송 시대에 조성됐다고 한다. 높이 3.3m, 좌우 10m 정도. 영은사 입장 티켓에도 이 포대화상 사진이 올라 있다.

15년 전에 갔을 때는 사람들이 이 불상에 직접 올라가서 불상을 만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 포대화상 말고 이공지탑 부근의 비래봉 절벽에 이와 비슷한 모습의 불상이 하나 더 있다. 암벽을 파낸 석굴 안에 포대화상이 불룩한 배를 드러내고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원대에 조성된 상이다. 이 불상은 제공(濟公:1148~1209) 스님 상이라고도 한다. 제공 스님은 영은사에도 살면서 많은 기행을 남기며 활불(活佛)로 통한 전설적 인물이다.

영은사는 중국 선종 10찰에 속하는 고찰로, 인도에서 온 혜리 스님이 이곳에 들렀다가 인도의 영취산을 닮은 산을 보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던 천축국의 영취산이 어떻게 여기로 날아온 것인가’라고 감탄하며 이름을 ‘비래봉(飛來峰)’으로 짓고, 맞은편에 신성한 신령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는 뜻의 ‘영은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영은사는 5대10국의 오월(吳越)시대에 가장 번성했다. 당시에는 9개의 누(樓), 18개의 각(閣), 72개의 전(殿)에 모두 1천200여개의 방이 있었고, 승려 수는 3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1816년 큰 화재로 폐허가 되었고, 1823년부터 5년에 걸쳐 대웅보전과 천왕전, 약사전 등이 재건됐다. 그 후 1956년과 1975년에도 대규모 복원이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중심 불전인 대웅보전에는 높이 25m 정도의 거대한 석가모니불상이 있다. 1956년 저장미술대학 교수와 예술인들이 합작해 만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천왕전에는 ‘운림선사(雲林禪寺)’라는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다.

포대화상 불상은 근래에 들어서도 계속 조성되고 있다. 저장성 닝보(寧波)시 설두사(雪竇寺)에는 2006년 높이 54.7m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륵대불 ‘인간미륵’(포대화상 불상)이 건립돼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설두사가 있는 설두산은 중국불교 오대명산(五大名山)으로 꼽힌다. ‘인간미륵’으로 불리는 포대화상은 닝보 출신으로, 이곳 설두사를 중심으로 자비를 베풀어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그런 인연으로 이 미륵대불이 세워졌다.

중국 5대 불교명산과 불교도량은 다음과 같다. 산시성(山西省) 오대산(五台山) 문수도량(文殊道場), 쓰촨성(四川省) 아미산(峨眉山) 보현도량(普賢道場), 저장성(浙江省) 보타산(普陀山) 관음도량(觀音道場), 안후이성(安徽省) 구화산(九華山) 지장도량(地藏道場), 저장성 설두산 미륵도량(彌勒道場).

저장성 우시(無錫)에 있는 영산승경구 내에도 수많은 동자들에 둘러싸인 포대화상 불상을 근래에 건립, 방문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파격적 언행을 보였던 포대화상

포대화상은 중국의 대 혼란기인 5대10국 시대 후량의 선승으로 917년에 열반한 계차(契此)라는 스님이다.

배가 풍선처럼 불룩했던 스님은 항상 웃는 얼굴로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다. 무엇이든 주는 대로 먹고 어디서든 누워 잘 자면서도,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았다. 특히 어린아이들과 친구처럼 잘 어울렸다.

어떤 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다. “스님은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 허비하고 계십니까. 스님께서 불법을 깨달으셨다면 저희들에게 그 불법을 보여주십시오.” 그는 포대를 땅바닥에다 내려놓으며 “이것이다. 이것이 불법의 진수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도 메고 있는 짐을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다시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스님은 다시 포대를 짊어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다음 일이다. 나는 짐을 짊어졌지만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포대화상은 여러 수의 게송을 남겼다. 그 중 일부다.

‘발우 하나로 천 집의 밥을 얻어먹고(一鉢千家飯)/ 외로운 몸 만리에 노닌다(孤身萬里遊)/ 푸른 눈 알아보는 이 없으니(靑目睹人少)/ 흰구름에게 길을 묻노라(問路白雲頭)’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我有一布袋)/ 허공에 걸림이 없어라(虛空無罫碍)/ 열어 펼치면 우주를 두루 감싸고(展開遍宇宙)/ 오므리면 관자재로다(入時觀自在)’

‘미륵 참 미륵이여(彌勒眞彌勒)/ 천백억의 몸으로 나누어(分身千百億)/ 때때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건만(時時示時人)/ 그 사람들 알지 못하더라(時人自不識)’

포대화상은 마지막 게송을 임종게로 남기고, 출가한 악림사 옆 큰 바위에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했다 한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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