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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칼럼] ‘재활 난민’과 ‘기러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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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2


19세이하 뇌병변·발달장애

지난해 기준 7만2천명 넘어

재활의료기관 수 절대 부족

입원기간 끝나면 난민 신세

공공재활기관 지원 늘려야

강선우 전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인종이나 종교, 정치·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난민’과 자녀 교육을 위해 배우자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 하는 ‘기러기 아빠’가 공존하는 가족들이 있다. 그것도 생각 보다 많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A군은 올해로 세 살이다. 하지만 A군은 목을 가누는 것이 아직 힘들다. 말을 배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A군은 충북 청주지역의 대학병원과 재활요양병원에서 각각 3개월, 6개월 재활 치료를 받았다. 집 인근이라 그나마 치료가 편했는데, 밀린 환자 때문에 치료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됐다.

A군 가족은 경기도 광주의 외가댁 근처로 이사했다. 수도권 재활병원 여러 곳에 ‘치료 대기’를 신청해 놓은 뒤, 자리가 나는 곳에서 입원하고 치료도 받는다.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평균 3~4개월 남짓이라 ‘치료 대기’ 상태를 면하기 힘들다. 입원 기간 만료에 따라 늘 새로운 병원을 찾아 나서야 하는 사실상 ‘재활 난민’ 신세다.

하지만 A군의 아버지는 청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경기도 광주로 함께 이주하지 못했다. 졸지에 가족들과 떨어진 ‘기러기 아빠’ 처지가 됐다. 경제규모 세계 11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도 이런 ‘불편한 진실’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재활 난민’의 상당수가 오랜 기간 꾸준한 재활이 필요한 장애 유형인 ‘뇌병변 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라는 점에서 더 뼈아프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등록장애인 기준, 19세 이하 뇌병변 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의 합은 7만2천409명이었다.

왜 이들이 ‘치료 난민’ 신세를 면키 힘들까. 아동 재활치료는 성인보다 품이 많이 들고, 수익성도 높지 않아서다. 힘든 데다 소위 말하는 ‘돈’이 안 되니 병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전국 유일의 어린이 전문 재활 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 병원’도 적자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7년 31억원 적자에 이어, 지난해에도 26억원 적자였다. 치료를 하면 할수록 적자다 보니 의료기관 수가 적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료기관 수는 대략 3만여 개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재활 의료기관은 223곳(2017년 기준) 뿐이다. 1%도 안 되는데, 이마저도 종합병원의 작은 과 형태이거나 의원급 시설이다.

문재인정부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 출범과 함께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삼았다. 현재 충남권·경남권·전남권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전북권·강원권·경북권·충북권에 각 1~2개 공공어린이재활센터를 짓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

중앙 정부 노력 뿐 아니라, 지방 정부, 보건복지부가 더 유기적으로 협력해 기존 병원들을 공공재활의료기관으로 지정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 관련 조례 제정 등의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공공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과 확대도 중요하지만, 확대된 병원의 안정적 운영은 더 중요하다. 어린이 재활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가 낮으면, 공공 병원이 문을 열어도 의료의 질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운영의 문제는 건강보험 수가 개선 문제, 즉 돈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병원들이 치료 비용을 제대로 보전 받지 못하면 재활치료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고, 이는 또 다시 ‘재활 난민’과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게 된다.

재활 치료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 이 골든 타임을 놓치고 1~2년만 지나면 치료할 수 있었던 장애가 고착화돼 버린다. 국격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국가의 지원과 태도로 평가 받기도 한다. 골든 타임이 다가온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에, 지체할 시간은 없다.
강선우 전 대통령직속자문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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