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지역에서 출판하기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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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2 08:12  |  수정 2020-09-09 14:58  |  발행일 2019-10-22 제23면
[문화산책] 지역에서 출판하기

출근길에, 아파트 재활용품을 모으는 곳을 지나니 제법 많은 책이 버려져 있다. 문학잡지와 문학 서적이 대부분이다. 아까워 들추니 작가의 서명이 눈에 띄는 책도 있다. 몇 권을 챙겨서 출근하는데, 맘이 혼란스럽다.

한때는 새 책이 생기면 책 표지를 다른 종이로 덧씌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넘친다. 어떤 면에서는 책이 공해가 되기도 한다. 출판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에서는 상당히 공감하고 책임감도 느낀다.

지역에는 두 부류의 작가가 있다. 지역에 살면서 지역출판사를 믿고 출판하는 작가와 무조건 서울, 출판사 주소만 서울로 되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 후자를 절대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 전담 부서가 있고, 초판 몇 천 부 선인세를 받고 계약할 수 있으면 당연히 가야 한다. 아직 지역에서는 그런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판권에 서울 주소만 되어 있으면 무조건 좋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책을 내니 때깔이 난다? 정말이지 이제 그런 세상이 아니다. 우리 지역에도 책 잘 만드는 출판사가 많이 있다.

학이사에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가지만 먼저 원고를 보여주는 분들이 있다. 지역에서 출판을 해도 좋은 작품은 많이 읽힌다. 당연히 좋은 콘텐츠는 우수도서 선정이나 명성 있는 큰 문학상을 받고, 해외에 저작권 수출까지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작가들이 지역에서 출판을 하고 기쁨을 누리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지난봄에는 어느 분이 자신의 첫 작품집 원고를 보내왔다. 그래서 절차를 말씀드리고,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어 편집까지 완성했다. OK 교정을 앞둔 어느 날, 당신이 서울의 한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받은 문자 한 통을 내민다. 원고만 주시면 기획출판을 할 것이며, 5대 일간지에 광고를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이사도 이 조건으로 가능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그곳으로 가시라. 원고도 보지 않고 이런 조건을 내세우는 출판사에 가시라.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조건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보냈다.

몇 달 후 보내온 작품집 판권에서 아주 놀라운 글귀를 발견했다. 모든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작가의 의도에 따랐다는, 한마디로 우리 출판사는 교정 따위는 보지 않으니 우리 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또 작가는 그 책을 자랑스럽게 주위에 뿌릴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출판인으로서 종이가 된 나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정말이다. 이제는 출판사의 주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책을 출간하든 좋은 콘텐츠에 출판사의 정성만 더하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세상이 그런 세상이다. 내 작품은 좋은데 지역 출판사라 안 팔렸다는, 제발 그런 생각을 버리자는 말이다.

신중현 (도서출판 학이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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