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치료 효과’ 풍문에 개 구충제 품귀…당국은 우려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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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2 07:14  |  수정 2019-10-22 07:15  |  발행일 2019-10-22 제6면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말기 암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이 대구지역에서도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이하 구충제) 품귀현상을 낳고 있다. 관련 당국은 이 같은 현상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구충제 열풍은 지난달 4일 “말기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이 노출된 뒤 급속히 확산됐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말기 소세포폐암 환자 미국인 조 티펜스는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져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펜벤다졸이 들어있는 제품을 꾸준히 복용한 후 암이 완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절박한 상황에서 가만히 있기보다는 어떤 방법이라도 시도해보겠다”는 사람이 너도나도 구충제를 찾기 시작했다. 암이 광범위하게 전이돼 더이상 손 쓸 방법을 찾기 어렵게 되자 구충제를 복용하는 방법이라도 써 보겠다는 것.

유튜브영상 소개되며 구입 열풍
대구지역 취급점들도 품절앞둬
일부에선 절박함 악용 폭리 취해
식약처·의학계 등선 부작용 경고
“체력 약한 암환자에 위험할수도”


구충제 복용 공개임상시험을 시작한 직장암 4기인 한 유튜버는 영상을 통해 “2주차에 직장암 통증이 사라졌다”는 영상을 지난 9일 게시했다.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개그맨 김철민씨도 지난 7일부터 구충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대구지역에서도 구충제 구매 열풍이 불고 있다. 대구시내 6곳의 가축 약국 및 약품 취급점을 취재한 결과 이 제품을 판매하는 3곳 중 1곳은 품절, 2곳은 소량만 보유를 하고 있었다.

구충제를 보유하고 있다는 한 주인은 “원래 이렇게까지 많이 팔리던 제품이 아니었는데 최근 많이 나간다. 이제 1~2통 남았다”고 말했다. 16일 찾은 북구 노원동에 위치한 한 약국 주인은 “열풍이 일었던 지난달에 이어 지금까지 제품을 찾는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열풍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17일 암환우 커뮤니티 등에서는 암 투병 중인 가족이 스스로 원해 구충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하면서 종양이 줄어들거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글을 올린 암환우 가족은 “더 이상의 선택이 없으신 분들께 작은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고 “시도 예정인데 희망이 생긴다” 등의 반응이 뒤따랐다.

“구충제가 독해도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보다 독하겠나. 더 이상 말기 암환자의 복용의지를 막을 수 없는 상황으로, 셀프임상에 나서는 사례가 늘어나는 만큼 정부에서도 제지만 하지 말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 등으로 대책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이런 탓에 중고거래 카페 등에서도 구충제를 원하는 네티즌들이 늘어나자 이를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강아지 구충제 20알 기준 가격은 3만원선이지만 희망가격이 10만원인 경우와 가격이 명시되지 않고 거래를 통해 결정되는 경우 등이다. 거래가 끝난 몇몇 게시물은 신속히 사라졌다.

사정이 이렇지만 사람에 대한 임상시험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작용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말기암 환자에게 효과가 있었던 사례 역시 그가 구충제만 복용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구충제 열풍에 놀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의학계 등은 잇따라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구충제는 사람 몸에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로, 사람에게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특히 말기 암 환자는 항암치료로 인해 체력이 저하된 상태이므로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항암제로 허가 받지 않은 약품을 암환자는 절대로 복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동물용 의약품 판매 시 구매자에게 반드시 용도를 확인하는 등 투약지도가 필요하며 수의사도 동물진료 후 판매토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동물약국협회 역시 “동물에게 투여시 다른 약물에 비해 안전성이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범혈구 감소증과 같이 생명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보인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며 “사람에 대한 효능,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단순히 동물실험자료만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실험실 시험·동물 시험·인체임상 1~3상 시험을 거쳐 그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돼야 비로소 인체용 의약품으로 허가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상관 대구수의사회장은 “항암효과가 증명됐으면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지만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한다”라며 “실제로 문의 전화가 많이 오지만, 얼마 전 대한수의사협회에서도 사람이 아닌 동물진료 후 판매될 수 있도록 철저를 기해줄 것을 당부하는 공문이 내려온 만큼 처방이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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