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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성] 야성적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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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1

미국 경제 전문매체 블룸버그가 한국의 ‘강남 좌파’를 직격했다. 슐리 렌 블룸버그 아시아 경제 담당 칼럼니스트는 ‘부패한 억만장자보다 나쁜 게 사회주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 주식 투자자들은 부패한 정부 관료보다 강남 좌파가 더 나쁘다고 말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강남 좌파가 최저임금 인상, 재정지출을 통한 공공부문 일자리 증대 등 사회주의 정책을 옹호하는 한국 내 엘리트 계층을 뜻한다는 설명도 부연했다. 렌은 문재인정부의 사회주의 정책이 시장의 ‘야성적 충동’을 침체시키는 현상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야성적 충동’이란 용어의 지적 소유권자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다. 케인즈는 1936년 발간한 저서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인간의 비경제적 본성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처음 언급하면서 1930년대 대공황의 발생과 소멸을 심리적 변화로 설명했다. 미래의 불확실성과 맞닥뜨려 동물적 감각이나 직관(直觀)에 의해 과감한 투자 결정을 하는 기업인을 비유할 때도 흔히 야성적 충동이란 말을 끌어다 쓴다. 1971년 영국에서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현대조선소 투자금을 유치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야성적 충동의 전설로 회자된다.

한국의 싸이월드는 페이스북 이전에 등장했다. 새롬기술은 스카이프, 판도라TV는 유튜브를 앞질렀고, 아이리버의 MP3 플레이어는 애플의 아이팟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세계 제패는커녕 그리 오래지 않아 주저앉고 말았다. 왜일까. 이스라엘의 정부 주도 벤처펀드 요즈마의 초대 CEO 이갈 에를리히가 회고록 ‘요즈마 스토리’에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첫째, 시작부터 글로벌을 지향한 이스라엘과 달리 한국은 글로벌을 두려워하고 국내 시장 안에만 머물렀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한 사람을 질책하는 계층구조식 사회라고 진단했다. 에를리히는 이게 새로운 시도를 막는 걸림돌이라고 봤다. 그의 분석은 우리 기업인의 ‘야성적 충동’이 결여됐다는 충고로 들린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렌의 지적대로 정부 정책기조나 지나친 규제가 기업인의 야성적 충동을 저하시키지 않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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