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인터넷 댓글과 민주주의

  •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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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21   |  발행일 2019-10-21 제30면   |  수정 2019-10-21
[하프타임] 인터넷 댓글과 민주주의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있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와 아고라(agora)다. 신전과 주요 관공서가 위치한 아크로폴리스는 정치·종교의 중심지, 아고라는 시민 생활의 주무대 역할을 했다.

‘시장에 나오다’ ‘사다’ 등의 의미를 지닌 아고라는 시장의 기능 외에 의사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됐다. 시민들이 사교 활동을 하면서 여론을 형성하던 광장, 즉 ‘사람이 모이는 곳’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에 대한 토론은 물론, 주요 정책 결정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체제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나 독재자가 될 위험이 있는 자를 국외로 쫓아내는 ‘도편추방’ 집회와 재판도 아고라에서 열렸다고 한다. 특히 아고라는 ‘개방된’ 소통의 장소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었던 만큼, 오늘날 공적인 의사소통이나 직접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공간, 또는 그러한 행위 자체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아고라의 역할을 포털 사이트가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특정 이슈나 어젠다에 대한 의견이 넘쳐난다. 하루에 올라오는 댓글수만 해도 천문학적 규모일 것으로 짐작된다. 정부 정책이나 민감한 내용에는 수천명이 실시간으로 의견을 달 정도다.

사안의 중요성을 넘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발로다. 직접 민주주의의 진화한 형태로도 볼 수 있다. 반면 포털사이트의 댓글과 관련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꾸준하다. 여론 조작은 물론 계층·성별·지역·이념·세대 간 갈등을 고조시키는데다 ‘악플’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크다는 의견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한 유명 연예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국민청원이 잇따라 올라왔다. 악플로 인해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는 주장이다. 한발 더 나아가 포털사이트의 댓글 기능 자체를 없애자는 극단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익명성 뒤에 숨어 사실왜곡이나 막말을 일삼는 이들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같은 관점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있어 표현의 자유는 핵심 가치 중 하나다. 의사 표현은 여론 형성, 집회·결사의 자유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는 데 기여한다. 댓글 차단과 같은 개인의 표현을 제한하는 행위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를 억압하고, 감시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권력층이나 특권층이 오히려 이를 악용할 수도 있는 문제다.

모든 제도나 장치가 완벽할 순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새로운 방안을 고심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머리를 맞대고 소통을 해야 하는 셈이다. 댓글 문제도 마찬가지다. 관련 법률과 제도를 개선하고, 올바른 인터넷 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할 때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일을 반복해선 안된다.

박종진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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