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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머리, 가슴,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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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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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곤충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 ), ( ), ( )이다”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어느 학생이 ‘(죽), (는), (다)’라고 답을 썼다. 교사가 의도한 답은 머리, 가슴, 배였다. 곤충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도 머리, 가슴, 배로 나눌 수 있다. 머리는 분별하고 계교하는 역할을 하고, 가슴은 호오(好惡)나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을 담당하고, 그리고 배는 쾌, 불쾌와 같은 욕망을 담당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국민을 머리, 가슴, 배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배는 생산자 계급을, 가슴은 무사 계급을 그리고 머리는 철학자 왕들인 통치자 계급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각 계급에 필요한 덕목이 있는데 욕망을 추구하는 배에 필요한 덕목은 절제이고, 가슴에 필요한 덕목은 용기이며, 머리에 필요한 덕목은 지혜라고 하였다.

플라톤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는 머리, 가슴, 배 중에서 머리를 가장 중시한다. 예컨대 배가 무엇을 원하든 관계없이 영양소를 골고루 고려한 식단을 짜고, 잠이 오지 않아도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려고 애쓴다. 감정을 변화무쌍한 것으로 여겨 무시하고 가급적 머리가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장자는 ‘즉양(則陽)’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백옥(伯玉)은 나이 육십에 육십 번 변화했다. 처음에는 옳다고 했던 일도 나중에는 잘못이라고 물리쳤다.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일도 지난 59년 동안 잘못이라고 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만물은 생겨나지만 그 근원을 볼 수가 없고, 모두 죽지만 그 나가는 문을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인간의 지력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존중하지만 지력이 알지 못하는 것에 의거한 것은 알려 하지 않는다. 이 어찌 커다란 어리석음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위에 인용한 거백옥과 같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몸은 매일매일 변하고 가슴도 끊임없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고정된 관념뿐이다. 우리는 한 번 옳다고 생각한 것은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주장도 일단 입에서 뱉어낸 후에는 그 말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누가 조금이라도 반대되는 말을 하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화를 낸다. 자신의 말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노자도 성인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비우고 그 배를 채우며(虛其心 實其腹)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하는 것(弱其志 强其骨)이라고 하였다. 마음과 뜻이 바로 머리가 하는 역할이며, 배를 채우고 뼈를 강하게 하는 것은 바로 몸, 곧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건강에 뜻을 두고 끊임없이 건강에 좋은 것을 찾아 먹고 실천하려하지만 실은 그것은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강의 비결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데 있지 머리로 따지고 비교하는데 있지 않다.

플라톤은 머리가 가슴과 배를 지배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러한 생각이 인류를 점점 도(道)와 멀어지게 하였다. 어느 선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가는데 평생이 걸렸다고 했지만 가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가슴에서 다시 배까지 내려가도록 해야 진정 도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장자는 도를 배에서 찾는다면 온종일 말해도 도에 어긋나지 않지만, 머리로 도를 구하거나 말한다면 온종일 말해도 도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하였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머리의 역할은 최소화하고, 가슴은 보다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무엇보다도 배가 삶의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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