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대통령의 레임덕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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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9   |  발행일 2019-10-19 제23면   |  수정 2020-09-08
20191019
최병묵 정치평론가

‘조국 대전’이 정치권을 강타한 이후부터 끊임없이 따라다닌 단어가 문재인 대통령 레임덕이다. 조국씨는 결국 패장(敗將)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문 대통령 레임덕은 시작됐는가.

레임덕은 ‘뒤뚱거리는 오리’를 가리킨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의 권위나 명령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가 이미 그 상황에 들어갔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40%를 밑돌면 확실하다고 말한다. 실제 대통령 지지율이 40% 안팎이긴 하다. 지지율 절대치를 레임덕 기준으로 삼는 것을 다수가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기대 섞인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몇가지 지표들을 살펴보자. 조국 사태 이후 실제 정치 행정의 현장에서 대통령의 영(令)이 서질 않는가. 조국 사태 와중에서 민심을 그나마 전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용진, 금태섭 의원 정도다. 비주류들도 침묵했다. 왜 그랬을까. 가까이는 6개월도 남지 않은 총선 때문이리라. 경선이 원칙이라지만, 당 지도부에 잘못 보여 정치현장에서 사라진 선배들을 보면서 뭘 배웠겠는가.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하자 뒤늦게 김해영 최고위원, 정성호·이철희 의원 정도가 ‘절반의 성찰’을 했다. 그만큼 당내에서 문 대통령의 영은 아직까진 성역이다. 사석에서 불만을 쏟아내는 정도다.

문 대통령은 핵심지지층을 갖고 있다. 그것이 전 유권자의 몇 %인지는 불명확하다. 과거 친노(親盧)세력에 견주어보면 대략 15~20%라는 게 정설이다. 세대로 따지면 30대와 40대가 주축이다. 문 대통령이 본인의 밑천을 털어가면서 조국 지키기에 나섰던 진짜 이유는 바로 이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은 꽤 설득력이 있다. 친노가 폐족이 됐던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말 한미FTA, 제주 강정기지 건설 등 ‘보수적 이슈’를 추진하면서 핵심지지층의 이반을 불러왔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믿는 듯하다. 그들로선 조국을 조기에 버리면 과거 전철을 밟을 것으로 판단했을 법하다. 결과적으로 조국은 떠났지만 적어도 ‘지키려는 노력’만은 친문 다수로부터 평가받을 것이다. 문 대통령으로선 그게 소득이다. 레임덕은 막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큰 것을 놓쳐 큰 일 났다는 생각은 그들의 머릿속에 아예 없다.

행정부 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검찰의 적폐 수사 장기화는 공직자들의 입을 막았다. 상급자가 시키면 반드시 기록을 남겨놓는 것이 요즘 공무원들의 생존법이라고 한다. 나중에 적폐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니 영이 서고 안 서고 할 계제가 아니다. 정권초부터 “명령을 내리면 하되 내 책임은 아니다”는 생활철학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 이후 이런 공직 문화가 특별히 바뀐 것 같지는 않다. 행정부의 영역에서 대통령의 영이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대통령 임기가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청와대 근무를 하라고 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피하는 것도 대표적인 레임덕 현상이다. 이 정부에서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다.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한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 후임을 물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여권내 문재인 대통령의 영향력이 결코 줄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어느 대통령이든 레임덕은 오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의 첫 번째 고비는 내년 총선이다. 제1당을 놓치면 레임덕 초기, 대패하면 레임덕 중기다. 대안정치연대,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 범여권을 합해서 과반을 이루면 레임덕 돌입 시기를 다소 늦출 수 있다.

조국 사태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자. 핵심지지층은 기본자산이다. 이건 지켰다. 한국당 지지층은 어차피 부채였으니 논외로 하자. 문제는 투자자들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아직 이들을 부채로 잡기엔 이르다. 이들이 ‘투자 관망’으로 돌아서는데 조국 전 장관이 큰 기여를 한 것은 명백하다. 총선을 앞둔 정당으로서 매우 위험한 포트폴리오를 선택한 셈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큰 손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총선 결과는 보나마나다. 이렇게 본다면 조국 사태는 문 대통령 스스로 레임덕의 씨앗을 뿌린 격이 되고 말았다. 그 씨앗은 지금 자라고 있다.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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