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韓음식문화포럼 첫 시리즈물 ‘국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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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8   |  발행일 2019-10-18 제41면   |  수정 2019-10-18
팔도 식객들이 푼 ‘국밥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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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육개장의 백미로 불리는 대구 ‘따로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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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의 입맛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제주 대표음식 중 하나인 모자반 가득한 ‘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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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주민들의 곰삭은 맛이 녹아들어간 간국의 대표격인 조기 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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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음식의 백미로 불리는 설렁탕.

나는 한국 국밥의 연대기 일단을 보여주는 공저 출간에 동참하게 됐다. 최근 그 결과물이 나왔다. 그걸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한 출판 관련 사무실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도 다녀왔다.

책 제목은 ‘제주에서 서울까지, 삶을 말아낸 국 한 그릇’이란 부제가 달린 ‘국밥’(따비 출판사). 포켓북 같지만 내용은 상당히 농밀하다. 주마간산식으로 설렁설렁 적은 글이 아니다. 논문이랄 정도로 고급진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권의 설렁탕, 제주도 몸국과 고사리육개장, 부산의 돼지국밥, 전라도 간국, 대구권의 따로국밥을 다루었다. 설렁탕은 음식연구가인 박정배씨, 몸국은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 겸 제주음식 전문 레스토랑 ‘낭푼밥상’대표, 돼지국밥은 시인으로 활동하는 최원준 동의대 평생교육원 교수, 간국은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따로국밥 파트는 내가 맡았다.

이들 멤버는 최근 발족한 ‘한국음식문화포럼’의 일원. 통영 및 남해안권은 사진가 겸 요리연구가인 이상희 통영음식문화연구소장이 커버하고 있다.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도 포럼에 동참했다. 모든 멤버가 공동대표로 움직이고 있는데, 향후 충청도와 강원도 대표 식객도 가세할 예정이다.

◆팔도식객 한국음식문화포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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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부산, 서울경기, 통영 및 남해권, 서해안권, 대구경북권을 대표하는 식객 및 음식연구가로 구성된 ‘한국음식문화포럼’ 멤버들이 ‘밥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식주주의 휘호를 맞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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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문화의 신지평을 열기 위해 만들어진 팔도 식객들의 모임체인 ‘한국음식문화포럼’. 포럼 출범 기념 1탄으로 출간한 첫 시리즈물인 ‘국밥’.

2년 전 팔도 식객들이 한 데 모여 만든 모임이 바로 ‘전국식객연대’. 그것이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한국음식문화포럼으로 확대재편됐다. 한·중·일 음식의 기원은 물론 전국 원조식당의 실체, 팔도 제철 식재료 및 특산물 정보 등을 공유하는 ‘음식문화 콘텐츠뱅크’ 같은 모임이다. 포럼은 따비출판사와 손을 잡고 국밥에 이어 내년초에는 ‘팔도 국수 연대기’를 펴낼 작정이다. 일종의 시리즈물이다. 이들은 3개월마다 지역별 행사를 갖고 국내외 푸드 트렌드를 체크해가며 푸드 관련 정보를 공유할 계획이다.

이번 공저는 국내 음식연구가들한테도 신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단 자기 주장이 무척 센 식객과 음식연구가, 음식전문기자 등이 한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 자체가 신선한 뉴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포럼이 내건 첫 슬로건은 ‘음식이 주인이 되는 식주주의(食主主義) 세상을 준비하자’. 그들은 요즘 한국의 음식담론이 너무나 주먹구구식이고 흥미위주고 중구난방 예능프로의 먹잇감이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책 출간
흥미 위주 먹방·쿡방 음식문화 왜곡
식객·요리 연구가·전문기자 등 투합
국내외 푸드 트렌드 정보 공유·토론

장터국밥·육개장 혼용‘대구 따로국밥’
고기 부위별 다른 버전‘부산 돼지국밥’
섬 주민 입맛 녹아 들어간 ‘제주 몸국’
염장후 말린 생선 끓여낸‘서해 간국’
남대문 밖 잠배서 성업 ‘서울 설렁탕’



다양한 식객군이 존재하지만 정작 현재 우리의 식문화는 상당히 ‘불통’이다. 상반된 견해가 제대로 정리·정돈되지 않고 있다. 검증 안 된 일방적 주장만 난무한다. 먹방과 쿡방도 방송사 편한대로 진행된다. 유명인이 말하면 왜곡된 정보도 금세 진실이 되고만다. 바쁜 방송 일정에 쫓긴 프로그램 담당 구성작가의 흥미유발 위주의 예능식 구성안이 음식문화를 왜곡시키는 현실을 우려한다.

정확한 음식문화와 방송국의 잡담 인문학은 이제 구별되어야 한다. 서로가 가진 정보가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하려면 일단 전문가끼리 모여 이견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음식문화가 더욱 심대해질 수 있고 국제적 위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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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돼지국밥 중 가장 독특한 형태인 평산옥의 소면돼지국밥. 제주도 고기국수와 일본 돈고츠라멘을 연상시킨다.

◆전국의 탕과 국문화

포럼은 국밥이 한식의 핵심 축이라는 전제하에 첫 공저의 주제를 국밥으로 정했다. 전국의 탕과 국 문화를 일별하기로 했다.

최 시인은 부산 돼지국밥의 탄생 배경, 그리고 국물의 맑기 정도 및 고기 부위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버전의 돼지국밥을 잘 정리해 주었다. 나는 대구에 와야만 먹을 수 있는 선지육개장의 백미랄 수 있는 ‘따로국밥’이 대구탕반(대구탕), 해장국, 육개장, 장터국밥 등의 혼합태이고 그게 6·25전쟁 때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렸고, 다른 멤버들도 이 사실에 공감을 했다.

양씨는 제주도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몸국’에 대한 연대기를 정리했다. 그는 제주향토음식 1호 명인인 모친의 연구를 토대로 30여년간 제주의 향토음식문화에 대한 재조명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전통음식의 근본을 찾는 작업을 진행하며, 가족기업으로 요리학원과 제과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슬로푸드와 로컬푸드 활동가로서 방송과 기고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산업화로 변질되어가는 제주 음식의 원형 보전과 함께 발전 방향을 찾기 위해 직접 제주 향토음식 전문점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이기도 하다.

그는 제주전통음식의 본질과 몸국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제주의 밥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국의 활용이다. 제주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국이 빠진 밥상은 차리지 않았다. 이는 거친 잡곡밥을 먹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제주의 전통 음식에는 찌개가 존재하지 않는다.

몸국은 잔치나 초상처럼 많은 손님을 치르는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에 한해 특별히 끓이던 국이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해마다 언제 끓이게 될지 모르는 몸국을 위해 모자반과 고사리를 말려 저장해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소사를 치르는 기간 내내 고기를 적당하게 분배하는 일까지 맡는 특별한 존재가 있는데, 다름 아닌 ‘도감 어르신’이다

몸국 핵심재료인 모자반은 제주 지역의 조하대에서 서식하는 종으로 다년생 해조류이다. 우리가 식용으로 먹는 부분은 모자반의 어린 순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보통 1~2월 해녀들이 상부의 어린 순만 절취하여 수확한다. 현재 제주에서도 제주산 모자반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상태이다. 결국 다른 지역에서 들여온 모자반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 사람들은 이를 ‘육지 모자반’이라 부른다.

서해안 간국 이야기의 요지는 대충 이렇다.

간국은 생선을 염장해 말린 후 자작하게 끓여 국처럼 만든 것이다. 그중에서도 조기, 우럭, 민어, 숭어 등을 많이 이용한다. 간국을 만들 때 조리의 핵심은 비린내를 잡는 것. 이때 쌀뜨물을 이용한다.

목포는 신안과 진도 등 서남해 섬 지역 수산물의 집산지다. 민어, 홍어, 낙지와 함께 우럭간국이 별미다. 우럭간국은 말린 우럭을 푹 끓여낸 것이다. 사골 국물처럼 뽀얗다.

대천, 태안, 서산에서는 ‘우럭젓국’을 즐겼다. 살은 찜으로 먹고, 머리와 뼈는 제사상에 올렸던 두부를 내려 푹 끓인 후 새우젓으로 간을 해서 먹은 것이 유래라고 한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기 때문에 젓국이라 이름 붙여졌다는 말도 있다.

서울발 설렁탕의 연대기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이 책은 알려준다.

설렁탕은 서울 음식이다. 외식이 본격화한 19세기말부터 탕반 하면 대구가 따라붙는 것처럼 설렁탕 하면 서울이 따라붙는다. 서울 설렁탕이 처음 규모를 갖춘 곳은 남대문 밖 잠배(현 중림동)였다. 20세기초까지 남대문 안쪽에는 한성에 물건을 공급하는 선혜청 창내장(현 남대문시장)이 있었고 남대문 바깥쪽엔 한강을 따라 올라온 생선을 주로 파는 칠패시장이 있었다. 새벽에 장이 열리는 칠패시장 때문에 어물전 상인과 인부들은 새벽부터 문을 여는 식당이 필요했다. 칠패시장 주변 잠배 설렁탕은 필연이 만든 산물이었다.

잠배에 있던 설렁탕 식당들은 1900년 경인철도 남대문정거장이 세워지면서 급속히 몰락한 칠패시장과 운명을 같이한다. 하지만 6·25전쟁 이전까지 잠배골에선 ‘잠배설렁탕’이란 집이 유명했다. 서울시청 건너편 중앙일보사 주변에 있는 ‘잼배옥’은 33년 창업한 뒤 몇 번의 이사를 거쳐 74년 지금 자리에 터를 잡아 영업하고 있다.

현 종로타워 뒤켠인 이문(里門)은 당시 도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자 검문소가 있었고, 나무시장이 주변에 있었다. 이문 안쪽에는 이문이란 이름을 단 식당이 많았다. 구한말 세워졌다 사라진 이문옥과 20세기 초반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이문식당, 1920년대에 기록이 남아 있는 이문설농탕은 모두 설렁탕을 팔던 식당이다. 1902년부터 시작된 이문설농탕이 가장 오래 된 설렁탕집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960년에 현재 주인의 어머니가 양씨 성을 가진 주인으로부터 인수했다고 한다.

글·사진=이춘호 음식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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