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청정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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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8   |  발행일 2019-10-18 제23면   |  수정 2019-10-18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에서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꼽힌다. 그 지도력의 요체는 무엇일까. 세종연구가들은 능력있는 자라면 신분과 지위고하를 막론한 인재 등용과 함께 ‘청정(聽政)’을 꼽았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나라정책을 결정하거나 정무를 수행하는 행위를 청정이라 했다. 듣는 정치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는 의미다. 조선 건국을 주도한 정도전 등은 임금도 유교적 교양을 갖출 것을 요구했고 나아가 유교적 지식을 갖춘 이들의 의견 경청을 강조했다. 이들이 설계한 지식국가 조선은 임금의 나라도, 신하의 나라도 아니었다. 임금과 신하가 협력해 백성의 의견을 주의깊게 경청하는 나라였다.

경청을 잘하는 임금으로 첫손 꼽히는 임금이 세종이다. 세종은 신하의 말만 아니라 백성의 뜻도 잘 들었다. 아주 높은 수준의 경청이다. 어전회의에서 세종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고 운을 떼 신하들로 하여금 이야기하게 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수시로 간언(諫言)을 청했다. 간언은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게 하는 말이다. 세종이 경청을 중시한 것은 ‘세종실록’에 聽(들을 청)자를 붙여서 정치와 행정과정을 나타낸 용어가 무려 15개나 등장하는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다른 임금들의 실록과 비교하면 아주 높은 빈도이다. 전문가들은 세종시대에 이룩된 위대한 업적은 세종의 뛰어난 경청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세종은 백성의 말에도 귀기울였다. 새로운 세법 실시에 앞서 고관부터 농민에 이르기까지 약 17만명에게 찬반 의견을 묻기도 했다. 세종의 리더십은 특별한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청정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 聽이 함축한 의미를 충실하게 따랐다.

조국사태를 계기로 청정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위정자들이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라며, 4가지 두려워할 대상의 하나로 백성을 꼽았다. 모든 헤아림의 중심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백성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두려움이 없었다. 국민의 마음에도 소홀했다. 그 결과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와 여당 지지율이 급락했다.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편향된 생각이 빚어낸 결과다. 늦었다고 할 때가 빠르다. 청정이 절실하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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