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인간과 자연의 오래된 만남 : 구곡문화

  • 이은경
  • |
  • 입력 2019-10-17   |  발행일 2019-10-17 제30면   |  수정 2020-09-08
지역의 강한 유학적 전통이
구곡문화 지속적 성행 원천
수려한 자연환경도 주요인
오늘날 구곡문화 존재 몰라
올가을 선현 구곡 걸어보자
20191017
조유영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성리학을 집대성했던 남송(南宋)의 주자(朱子, 1130~1200)는 만년에 중국 복건성 무이산(武夷山)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은거구도(隱居求道)하면서 무이산 계류(溪流) 아홉 굽이를 배경으로 10수의 ‘무이도가(武夷櫂歌)’를 지었다. 주자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조선조 선비들은 주자의 무이산 은거를 유자(儒者)의 이상적 삶의 모습으로 인식하면서 이 땅에 수많은 구곡원림(九曲園林)들을 설정하고, 자신의 구곡시가(九曲詩歌)를 창작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구곡문화는 주자의 무이구곡 경영과 ‘무이도가’에 영향 받아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문화가 다른 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문화로 창출된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우리의 구곡문화 또한 이 땅의 자연 환경과 인문 사회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영남지역의 구곡문화를 살펴보면 다른 어떤 지역보다 구곡문화가 성행한 곳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지역의 강한 유학적 전통은 구곡문화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며, 또한 산간 분지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크고 작은 하천 및 수려한 자연환경은 구곡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또한 그 중에서도 대구는 북쪽의 팔공산, 남쪽의 비슬산과 서쪽의 와룡산 등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그 사이를 낙동강과 금호강, 신천이라는 크고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어 구곡문화 발달이 용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구지역의 구곡을 크게 셋으로 나눈다면 먼저 팔공산을 배경으로 조성된 구곡이 존재하는데, 조선 후기 최효술(崔孝述, 1786~1870)의 농연구곡(聾淵九曲)이 대표적이다. 최효술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벗이던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 1705~1786)의 증손이다. 최효술 이전에 최흥원은 1755년 팔공산 용수천에 농연정(聾淵亭)을 건립하면서 구곡 경영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이후 최효술은 ‘농연구곡시’를 창작하여 농연구곡을 확립하였다.

대구 남쪽의 비슬산 내지 최정산을 중심으로 설정된 구곡 또한 다수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구곡으로 수남구곡(守南九曲)을 들 수 있다. 수남구곡은 최근 달성군에서 편찬한 ‘달성군지’(1992)를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언제 누구에 의해 경영되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그 실체를 명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구곡이 펼쳐져 있는 가창 우록리 일대가 주자 성리학의 전통이 오랫동안 그 영향력을 지속해왔던 지역이라는 점에서 수남구곡이 실제 존재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대구 서쪽 와룡산 일대의 낙동강 및 금호강을 중심으로 조성된 구곡 중 대표적인 구곡으로는 조선 후기 우성규(禹成圭, 1830~1905)에 의해 경영된 운림구곡(雲林九曲)을 들 수 있다. 우성규는 호를 경도재(景陶齋)라고 칭했을 정도로 퇴계를 깊이 존숭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설정한 운림구곡은 사문진 나루의 용산에서 시작하여 조선 중기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강학처(講學處)인 사양정사(泗陽精舍)까지,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설정된 구곡이다.

이외에도 대구지역에는 채준도(蔡準道, 1834~1904)의 문암구곡(門巖九曲), 채황원(蔡晃源, 1883~1971)의 거연칠곡(居然七曲), 신성섭(申聖燮, 1882~1959)의 와룡산구곡(臥龍山九曲) 등 다수의 구곡이 경영되었으며, 근세까지 구곡문화가 활발하게 살아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 대구 사람들 중에는 우리 지역에 이러한 구곡문화가 존재했는지조차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조선 후기를 넘어 근세까지도 이어진 우리의 구곡문화는 산과 하천이라는 자연경관과 서원 및 정사와 같은 인문경관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전통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 요즘 같이 맑은 가을날, 대구의 산과 하천을 찾아 옛 선현들의 구곡을 걸어 보는 것은 어떨까.조유영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