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열정과 갑질 사이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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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5   |  발행일 2019-10-15 제30면   |  수정 2019-10-15
[취재수첩] 열정과 갑질 사이
서민지기자<사회부>

‘열정’과 ‘갑질’. 사뭇 다른 단어다. 하지만 최근 두 단어가 한끗 차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한 기초의회 구의원을 통해서다.

그는 분명 열정이 넘치는 의원이다. 초선의원답게 소명의식 역시 상당해 보였다. 주민을 향한 마음도 지극(?)하다. 그러나 마냥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앞뒤 가리지 않고 옆을 돌아볼 줄 모르는 과도한 열정이, 의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갑질로 변질됐기 때문인 것 같다. 더욱 무서운 건 그는 자신의 세상에 갇혀 갑질을 갑질로 생각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그는 공무원에게 부당한 지시와 요구를 한 점 등에 대해 지탄받고 있다. 특히 공무원을 사무실로 호출, 허락 받지 않은 생방송을 진행하며 윽박지르고 호통치는 행위로 인해 직원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구토 증상, 상복부 통증이 찾아와 병원에서 식도역류병·위장염 등 진단을 받았다는 직원도 나왔다.

피해자는 공무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건 발단 중 하나인 ‘A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 해임건’에서, 그가 “의회에 접수된 탄원서에 의하면 회장 해임은 불법”이라며 한쪽 말만 믿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측 일반인에게 밀봉한 해임동의요청서를 보여달라고 하는 등 일방적이고 권한 없는 행위를 했고, 심한 모멸감을 줬다는 제보가 서구청 공무원 노조에 접수됐다고 한다.

의회와 집행부는 상하관계가 아님에도 상황이 이렇지만, 정작 본인은 떳떳하다. 여전히 이를 열정적 의정활동의 일환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결국 14일 공무원 노조는 국민권익위에 그를 신고했다.

그는 자신을 ‘민원소통위원장’ ‘을(乙)지키는 민생실천위원회 부위원장’ ‘응징문화연구소장’ 등으로 소개한다. 민원, 을, 응징 등에 대한 그의 과한 열정이 결국 갑질로까지 이어지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궁금하다. 그가 말하는 을은 누구인가. 혹시 그 을이 전체를 아우르는 주민이 아니라 ‘내 편인, 나에게 민원을 제보한 주민’인 것은 아니었나. 그리고 그에게 느닷없이 응징당한 공무원은 을의 위치에, 자신은 갑의 위치에 서 있지는 않았나. 을을 지킨다던 그가 오히려 을을 양산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 이 모든 것을 열정적인 의정활동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나.

더욱이 그는 선악의 이분법에 매몰돼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 어떤 것이라도 절대적인 선은 있을 수 없는데, 그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는 맹신하지만, 반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듣지 않고 배척하는 듯하다. 적어도 이번 논란에서 그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림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평소 그는 자신이 주민의 투표로 뽑힌 선출직 공무원임을 크게 내세운다. 그렇다. 그의 말처럼 지금 그는 주민의 권한을 위임받아 의원 배지를 달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선거 과정에서 본 그의 ‘열정’을 택한 것이지, 이를 넘어선 ‘갑질’을 택한 것은 아니다. 지금 모습으로도 여전히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주민을 대변하는 선출직 공무원이라 말할 수 있을지는 그가 고민해봐야 할 사항이라 말하고 싶다.

열정이냐, 갑질이냐. 그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있다.서민지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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