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연구소 이상기 소장

  • 양승진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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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2   |  발행일 2019-10-12 제22면   |  수정 2019-10-12
“물체 만지기만 해도 DNA 남겨…10억분의 1 농도까지 검출 가능해”
20191012
10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연구소에서 이상기 소장이 DNA 분석 등 과학수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과학수사 발달에 따라 앞으로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같은 미제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범인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장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사건·사고 현장에 남은 체액, 체모, 범행도구 등 흔적은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범인의 가면을 벗겨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흔적은 범인 추적뿐 아니라 법정에서 혐의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로도 쓰인다. ‘완전 범죄’가 사라지고 미제사건의 범인이 속속 검거되는 건 이 흔적을 활용하는 과학수사기법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30여년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해결될 기미가 요원해 보이던 이 사건의 진범 이춘재(56)도 결국 과학수사기법에 꼬리가 잡혔다. 지난 10일 사건·사고 현장에 남은 ‘흔적’을 찾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대구연구소) 이상기 소장을 만나 과학수사의 역할과 현재를 짚어봤다. 이날 인터뷰에는 김남희 유전자 분석실장도 함께 했다.

화성살인사건땐 DNA 해외 의뢰
현재 국과수 분석기술 세계최고
고유정, 범행후 청소까지 했지만
곳곳서 시료채집 실마리 찾아내

대구연구소 작년 1만3천건 감정
‘노래방 살인’ 해결사례가 대표적


▶화성 연쇄살인사건 진범 이춘재를 검거하면서 과학수사 분야 중 DNA 분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초동수사를 포함, 경찰의 수사방향을 제시해 범인을 신속하게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DNA 분석에 필요한 생체 시료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나온다. 체액, 체모뿐 아니라 최근에는 물체를 접촉했을 때 묻은 피부각질 등 접촉 DNA도 중요한 분석 시료 중 하나다. 사건·사고 현장에 있는 모든 것이 과학수사를 위한 증거가 되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유전자 분석 같은 과학수사가 가능해졌다.”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선진국에 비해 유전자 분석 기술의 도입이 늦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채취한 DNA 시료를 해외에 보내 정밀감정을 의뢰했던 화성사건 당시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기술은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나라의 과학수사 능력이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건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 유기사건’ 이후라고 보면 된다. 당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프랑스인 B씨 집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는데 국과수 감식결과 둘이 형제 관계임이 확인됐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B씨 부부가 두 영아의 부모임을 밝혀냈으나 B씨는 수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결국 영아 시신의 조직은 프랑스로 보내졌고, 자국 과학수사연구소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부인 A씨는 범행을 자백했다. 프랑스 방송에서도 A씨가 체포된 이후 국과수를 취재하기 위해 방한하기도 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같은 장기미제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는 데 과학수사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 개구리 소년 사건 등 장기 미제사건은 현재 국과수 본원에서 별도의 팀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 하지만 수형인, 구속 피의자, 현장 채취 DNA 등이 데이터베이스화해 있어 범인 특정이 가능했다. 경찰이 이춘재를 화성 연쇄살인 사건 진범으로 특정할 수 있었던 건 5차·7차·9차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약독물 전공으로 DNA 분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DNA 시료는 보관 상태에 따라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채취와 분석이 가능하다. 사망한 지 수백년이 지난 미라에서도 DNA 시료를 채취해 분석할 수 있다. 건조만 잘 된다면 체액 등을 채취해 분석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증거물이 DNA 시료로 쓰일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DNA 분석을 위한 체액의 경우에는 습도 등 보관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잘 건조돼 있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채취와 분석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지문뿐 아니라 사건 현장에서 피의자가 만진 물체나 옷 등에 남아 있는 미세한 피부 세포, 각질 등도 접촉 DNA로 분석에 사용된다. 분석 장비들은 ppm(100만분율), ppb(10억분율)까지 검출이 가능하다. 낮은 농도의 시료에서도 얼마나 빨리 분석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장비 개선 등이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개청 6년을 맞은 대구연구소에서 DNA 분석을 통한 대표적인 사건 해결 사례는 무엇인가.

“2018년 감정 건수 1만3천여건, 올해만 해도 지난달까지 1만건의 감정을 했다. 이 가운데 대표적 사건을 뽑으면 10년 넘게 미제로 남아 있던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낸 ‘대구 노래방 살인 사건’이다. 2017년 11월 대구 중구에서 한 여성을 폭행한 뒤 손가방을 빼앗아 달아난 B씨를 경찰이 추적했는데 사건현장에서 B씨가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이를 수거해 대구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했는데 분석 결과 놀랍게도 2004년 6월 대구 북구에서 노래방 주인을 살해하고 달아난 피의자의 유전자 정보와 일치했다. 경찰의 추적 끝에 B씨는 검거됐고, 자칫 영구미제로 남을 뻔했던 사건이 DNA 분석을 통해서 해결됐다.”

▶현장에서 증거를 채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볼 수가 없다. 증거물이 인멸된 뒤에도 범인의 차량 내 이불에서 발견한 혈흔이나 졸피뎀을 통해 범행의 실마리를 푼 고유정 사건이 대표적이다. ‘시신 없는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훼손된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채집해 이를 분석한 뒤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과학수사는 수사 외에 다른 쪽으로도 활용할 수 있나.

“당연하다. 과학수사의 다른 이름은 ‘법(法) 과학’ ‘감정(鑑定) 과학’ ‘재판(裁判) 과학’이다. 수사의 방향성 제시뿐 아니라 법원에서 판결의 근거가 되는 증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분석이 이뤄진 증거는 때로는 인권을 수호하는 데도 쓰인다. 고문에 따른 허위자백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는 고문·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이 가능했지만 이젠 과학적 증거가 있기 때문에 구시대적 수사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인권 과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드라마·영화 등을 통해 과학수사가 널리 알려지면서 겪는 애로점도 있을 것 같다.

“최근 과학수사기법이 알려지면서 범죄 수법 또한 상당히 교묘해졌다.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면서 이 같은 분석방법을 회피하는 수법도 등장하고 있다. 과학수사를 소재로 한 영화·드라마 등 방영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맨몸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이젠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착용하고 복면을 쓰는 것으로 변했다. 아예 범행현장을 철저하게 훼손하는 경우도 많다. 일반인에게 범죄를 노출하는 것 자체가 모방범죄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상당히 조심스럽다.”

▶끝으로 국과수 대구연구소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가볍게 보고 넘어갈 수 있는 증거물은 절대 없다. 범죄 해결의 결정적인 증거를 채취했을 때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과학의 힘으로 진실을 밝혀낸다’는 신념으로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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