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검색하기

커버스토리 전체기사보기

스위치

‘기계발명 명장’ 꿈 이룬 성실한 신문배달 청년 “봉사하는 마음가짐 의정활동”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구글플러스
  • 기사내보내기
  • 임성수기자
  • 2019-10-11
  •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 영남일보 배달원 출신 김규환 국회의원

김규환 국회의원(자유한국당 대구 동구을 당협위원장)이 지난 8일 자신의 대구사무소에서 가진 영남일보와의 인터뷰가 끝난 뒤 45년 전 영남일보를 배달하면서 세번 접은 신문을 다시 종이로 싸는 모습을 재연하며 환하게 웃고있다.
“영남일보 때문에 제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난 8일 대구에서 만난 김규환 국회의원(자유한국당 대구 동구을 당협위원장)은 “정말 하루하루가 힘든 시절, 영남일보는 저에겐 희망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김 의원은 어린시절 너무 가난해 고향인 강원도 평창을 떠나 대구로 오면서 영남일보와 인연을 맺게 된다.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김 의원은 여동생을 출산하면서 아프기 시작한 어머니의 약값이라도 구해 보겠다는 심정으로 무작정 버스를 타고 고향을 떠난 것이 서울을 거쳐 대구까지 오게 됐다. 서울 철공소에서 알게 된 사장님의 소개로 당시 대구 동구 방촌동에 있던 남선알미늄에 취직한 그는 기술자들의 잔심부름을 했지만, 새벽에 일찍 출근해 회사 마당을 쓸면서 조금씩 기술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사환 월급은 객지에서 먹고사는 정도의 돈밖에 되지 않았고, 어머니 약값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런 고민을 알고 있던 이웃 한 분의 소개로 김 의원은 영남일보 배달 일을 시작한다. 매사에 근면·성실하던 그는 신문배달에도 자신만의 노력을 담았다. 다른 배달원들은 신문을 세번 접어 집앞에 던져 놓는 것이 전부였지만, 김 의원은 달랐다. 신문을 그냥 던져 놓게 되면 비가 오면 젖고, 바람이 많이 불면 날아가거나 신문이 찢어지는 것을 본 그는 공장에서 포장지로 사용하고 남은 얇은 흰종이를 새끼 꼬듯이 꼬아 세번 접은 신문을 묶은 뒤 배달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크게 훼손 되지 않고 정성까지 담긴 신문을 받아 본 독자들은 영남일보에 대한 고마움까지 표시했다고 한다. “영남일보는 배달할 때도 다른 신문과 달리 독자들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구독자 수도 늘었고 김 의원의 수당도 덩달아 올라갔다.
김규환 국회의원이 1975년 영남일보 배달원을 하면서도 틈틈이 익힌 기술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대구예선대회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1975년 김규환 국회의원이 참가했던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대구예선대회 선수증.
김규환 국회의원이 20대 총선에 당선되기 전인 2015년 3월 ‘영남일보 CEO아카데미’ 강연에서 자신과 영남일보와의 인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가난한 살림·초등 졸업 학력·아프신 어머니
약값 벌겠다고 고향 강원 평창 떠나 대구 터전
기계 기술 배우는 도중 영남일보 배달과 인연

궂은날 신문 손상 막으려 낸 아이디어
인근 공장서 남은 포장종이 새끼 꼬듯이 꼬아
신문 세번 접은후 묶으면 훼손없이 배달가능
독자 늘고 수당도 올라…형편도 차츰 나아져

19세때 유방근종암, 잠시 접은 기능올림픽 출전
완치후 국내외 대회 금메달 성과, 대통령 명장
국가위해 일해야겠다 결심…국회입성 꿈 이뤄
초중고 발명교육·청년명장 발굴 지원정책 시급
지역 넘어 성공·선행스토리 많이 연재해 줬으면


김 의원은 “전날 저녁에 퇴근하면서 쓰고 남은 포장 종이를 가져와서 미리 꼬아 놓고 다음날 아침 신문을 배달할 때 신문 하나하나를 묶었다. 독자들이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며 “여기에다 영남일보를 받아보는 독자들이 이왕 아침에 신문배달하는 거 우유배달도 함께 해 보라고 권유해 지금말로 투잡, 아니 스리잡을 뛰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병에 든 우유를 배달하기 위해선 자전거가 필요했다. 신문은 발로 뛰면서 배달이 충분했지만, 우유 배달은 상황이 달랐다. 이런 딱한 사정을 안 고물상 주인이 김 의원에게 낡은 자전거 한 대를 선물한다. 단 조건이 있었다. 자신의 사위가 돼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농담반 진담반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김 의원은 절실했던 자전거를 받기 위해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고물상 주인뿐만이 아니다. 김 의원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회사 동료와 이웃들의 사랑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 의원에겐 빚으로 남아있다.

김 의원은 “그때 신세를 진 분들 대부분이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이 동네(동구 방촌동 일대)에 사셨던 분들을 위해, 그 자손들에게라도 보답하기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역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 지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능올림픽을 준비할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무서웠던 손방호 형님과 유일한 친구였던 한 살 많은 박헌식을 만날 수 있어, 지금 지역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했을 정도로 궁핍했던 김 의원은 영남일보와 우유 배달로 수입이 조금씩 늘면서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기술공을 향해 한발한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영남일보와 우유 배달 일을 해서 번 돈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많았다”고 한 그는 “1974년부터 77년까지 영남일보 배달을 하면서 생활이 조금씩 나아져 어머니 약값도 보태고 기술 배우는 일에도 몰두할 수 있었다”며 “영남일보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의원은 꿈을 잠시 접어야 했다.

영남일보와 우유 배달, 회사 일을 함께 하면서도 저녁이면 회사에 남아 선배들에게 기술을 배우며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출전의 꿈을 키워 나가던 김 의원은 대구 예선대회를 마친 뒤 전국 대회를 준비하던 중 파티마병원 앞에서 쓰러져 수술까지 받는다. 오른쪽 젖가슴에 큰 혹이 생겨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기능올림픽을 향한 꿈을 접을 수 없어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일과 연습에만 몰두한 결과였다. 병명은 유방근종암, 그때 나이 19세였던 김 의원은 다행히 초기에 발견하고 수술을 받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는 “사실 그 때 수술비가 없어서 도망가다시피 해 병원을 나왔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저에게 며칠분의 약을 챙겨주신 안셀마 수녀님에게 늦었지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 수녀님이 그 때 해 주신 ‘꼭 나아서 세계대회에서 1등하라’는 말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국 김 의원은 병을 완치하고 10년 뒤 1985년 전국품질관리분임조경진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다. 86년에는 국제품질분임조대회(ICQCC) 한국대표로 출전해 최우수인증을 받았다. 회사를 옮긴 경남 창원 대우중공업의 경사였고, 김 의원은 기계발명분야에서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이 같은 성과는 초등학교 졸업장인 김 의원에게 대학 졸업장까지 선사한다. 기계조립 기능사 1급 자격증을 획득하면 입학자격이 주어지던 창원기능대학에서 우등공로상 수상으로 졸업장을 받은 것이다. 검정고시 없이 대학 졸업장을 받은 김 의원은 “일반 대학이 아니어서 학력이 대졸은 아니지만, 내가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는 자체가 나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92년 대한민국 품질명장 인증 대통령수여 1호 장인이 된 김 의원은 “어린시절 신암동 뒷골목에서 겨우 한끼를 때우며 살던 김규환이가 청와대에서 대구출신 노태우 대통령에게 직접 명장 인증서를 받던 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이 때부터 국가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꿈은 24년 만에 이뤄진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6번으로 당당히 국회에 입성한다. 김 의원은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일본을 이기려면 기초과학분야 노벨상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25개, 독일 104개가 있는 기초과학분야 노벨상이 우리나라엔 단 하나도 없다. 이 자체가 우리에겐 희망이 없어 보였다. 기초과학분야 발전을 위한 다양한 국가적 지원책을 법으로 만들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비례대표 신청을 하게 만들었다”고 국회의원이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비례대표 공천 면접심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째 유치부와 초·중·고등부별로 발명교육 지원육성법을 제정해 제도적으로 기초과학분야를 지원해야 합니다. 둘째 한국마이스터칼리지를 설립해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던 발명교육을 연계시키고, 이 학교 출신들을 ‘청년명장’으로 발굴해야 합니다. 셋째 세계발명경진대회를 열어 모든 발명품이 한국으로 모이게 하고, 그 발명품들을 청년명장들에 활용해 자신들만의 R&D(연구개발)를 통한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 내도록 해야 합니다. 하루가 급합니다.”

김 의원은 “비례대표 면접심사 당시 공천심사위원들이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생각은 반드시 이뤄지도록 하자’고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일본하면 전자제품, 스위스하면 시계, 독일하면 자동차가 있는데 우리를 내세울 만한 독보적인 기술력이 없다. 내 인생에 마지막 꿈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무동력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 전세계가 석유 없이도 온수를 펑펑 쓸 수 있도록 하는 난방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영남일보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영남일보의 지역 사랑은 대단한 것 같다. 다른 지역 신문에 비해 지역 소식이 많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역을 넘어 성공한 사람과 칭찬해 줘야 할 사람에 대한 기사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이들의 성공스토리나 선행스토리를 시리즈 형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께하고 싶은 것, 칭찬하고 싶은 것이 많이 소개되기를 바란다”며 “또 하나 부탁이 있다면 발명, 과학과 관련된 기사가 조금 적은데, 앞으로는 이런 분야 기사도 많이 발굴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남일보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영남일보 창간 74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말로 김 의원은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글·사진=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2019 

동계 골프 아카데미




12운성으로 보는 오늘의 운세

우오성의 사주사랑

수성구배너

서구청 배너

동구배너

2019 달빛소나기

철강도시 상생 환경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