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먹고사는 예술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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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8 08:04  |  수정 2020-09-09 14:45  |  발행일 2019-09-18 제23면
[문화산책] 먹고사는 예술
이지영 <극단 한울림 배우>

내가 연극을 해야겠다고 처음 생각한 건 유치원 학예발표회 후부터였다. 제목은 ‘골목대장’. 대사도 아직 생각난다. 부정선거에 관련된 짧은 연극이었는데 거기서 주인공도 아니고 그냥 골목대장의 동생 역을 맡았다. 극이 끝나고 나서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칭찬세례를 받았다. 얼떨떨했지만 ‘내가 이런 걸 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부터 계속 연극에 대한 꿈을 꾸었다.

이렇게 꿈꾸던 연극을 진짜로 시작할 때는 오로지 ‘연극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았다. 연기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고, 먹고사는 문제도 한참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해 살아가는 나의 연극은…. 글쎄, 잘 모르겠다.

물론 분명 그때보다 더 능숙해지고, 하다보니 글도 쓰고 연출도 하게 됐지만 나는 순수하지 않은 예술인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연극들은 흔히 말해 행사용, 상업적 연극이 80% 정도를 차지한다. 기관이나 단체의 의뢰를 받아 어떤 목적이 있는 극들, 축제의 주제에 맞는 내용들 말이다. 물론 이런 연극들도 하고 있으면 재미는 있다. 관객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보람도 있다. 하지만 마음 속엔 언제나 허전함이 남아 있다. 진짜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왠지 예술이라는 것은 순수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다. 내가 먹고사는 대부분의 돈은 이 상업적 연극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마음 속에 정확한 선을 긋고 있다. 하나는, 돈을 받고 하는 일은 돈 받은 값을 하자. 프로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돈은 안되더라도 정신적 가치를 꼭 추구하자. 아주 단순한 것 같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복잡한 것이어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회의감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내가 하고 싶은 연극에 관객이 많이 들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이 고민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만, 그런 연극을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 사람이 하는 일은 왜 이리 모순된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최근 성희롱 사건들만 봐도 뛰어난 예술인들조차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순수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추함을 가리기 위해 아름다움이란 이름으로 인간이 억지로 포장해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모순되고 나약한 두려움에 예술이라는 고귀한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이지. 그래서인지 난 예술하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결핍이 많은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어떤 식의 결핍이든, 자신도 모르게 이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닐까.

불안정한 사람들이 만드는 예술에 사람들은 감탄하며 안정감을 찾는 이 미묘한 무언가…. 정말 극과 극은 닿아 있듯 아름다움과 추함은 함께 하는 것인가 보다. 이지영 <극단 한울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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