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오디션, 그 긴장감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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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1 08:00  |  수정 2020-09-09 14:46  |  발행일 2019-09-11 제23면
[문화산책] 오디션, 그 긴장감

연극이란 것은 순수예술이라 고고하고 아름답게 나아가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셰익스피어의 명작처럼은 아니더라도 오래오래 살아남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평가를 비켜갈 수는 없다. 공연을 무대에 올릴 때 함께하는 동료의 평가도 있을 것이고, 관객이나 평론가의 평가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 가장 떨리는 일이라면 나는 오디션을 꼽겠다.

사실 대구에서는 오디션을 볼 일이 잘 없다. 극단 소속의 배우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사실 몇 년간 연극을 했다 하면 거의 서로 알게 되는 터라 작품을 할 때 원하는 이미지의 배우에게 출연 요청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도 오디션을 본 것은 서울에서 작품을 할 때 몇 번이 전부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할 때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럼 어찌 배우를 하냐고 묻는다면 무대에서는 ‘내가 아니라 그 배역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무대에 오르고 싶은 설렘이 있을 뿐 긴장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오디션은 아무리 배역이라고 생각해보려고 해도, ‘나 자신이 시험을 보는 것’이다. 코 앞에 있는 심사위원들에 의해 내가 떨어질지 말지 결정이 되는 것이니 긴장이 된다. 오늘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도 영영 없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오디션 심사를 볼 기회가 있었다. 평가받는 입장에서 평가를 하려니 쑥스러움이 조금 들었다. 오디션 참가자 중에 평소 알던 후배들도 있었는데, 오디션이라는 공간 안에서 만나니 그들이 다시 보였다. 평소에 욕심 많고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수를 연발하는 친구도 있었고, 소신있게 자신의 오디션 지원 동기를 밝히는 다른 친구의 모습을 보고는 긍정의 에너지를 받기도 했다. 물론 평소의 이미지처럼 차분하게 오디션에 임하는 친구도 있었고. 비록 우리가 원하는 배역에는 맞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각자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는 잘 보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디션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아주 조금은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기초가 탄탄히 준비된 배우의 오디션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시험처럼 맞고 틀림이 없다. 연기도 중요하지만 배역에 맞는 이미지도 중요한 것이어서 자기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배역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잘 준비된 배우로서 오디션을 본다면 설사 이번엔 같이할 수 없더라도, 다른 작품을 할 때 그 사람과 같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내가 양쪽의 입장이 다 되어보니 자기 위로차원이라 생각된 말들에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데, 오디션을 경쟁이나 평가라 생각지 말고 또 다른 찰떡같은 배역을 찾는 중이라 확신하자.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준비된 나를 찾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 다음에는 콩알만큼 정도는 덜 떨리겠지?

이지영 (극단 한울림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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