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얀테의 법칙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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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9   |  발행일 2019-09-09 제31면   |  수정 2019-09-09

한국사회에 휘게 바람이 거세다. 덴마크어 휘게(Hygge)는 편안함, 안락함 등을 뜻한다.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이다. 북유럽인의 삶에 일상화된 휘게는 어디서 올까. 보통사람의 삶을 추구하는, 그래서 ‘보통 사람의 법칙’이라 불리는 ‘얀테의 법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얀테의 법칙(Jante’s Law)은 덴마크 등 북유럽국가들이 가진 가치관의 뿌리다.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다른사람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등 10가지 행동지침이 있다. 한마디로 잘난 척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라는 것이다. 평범함에서 벗어나려는 행동, 개인적 야심을 품는 행동은 부적절하게 본다. 여기에는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본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북유럽인들이 비슷하게 입고 비슷하게 생긴 차를 타며 비슷한 물건으로 집을 꾸미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범한 데서 행복을 찾고 자신을 낮추며 남을 배려하는 의식이 혁신과 협업을 촉진하는 혁신문화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최근 북유럽의 휘게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회에 대한 아쉬움와 그런 사회에 대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과 보통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에 대한 기대이다. 최근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불거진 특권층의 평범치 않으면서 평범함을 가장한 삶은 범인들의 삶에 회의마저 들게 한다.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한스 홀바인이 있다. 영국 헨리8세의 궁정화가였던 그는 인물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과 정확한 사실주의적 묘사로 각광받았다. 그의 작품 중에 프랑스 대사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담은 ‘대사들’이 있다. 홀바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작품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작품에 많은 상징요소를 숨겨둬 그 의미를 더한다. 특히 초상화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골을 그려넣어 메멘토 모리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로마시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전쟁영웅들이 개선행진을 하는 전통에서 나온 말이다. 시민들의 함성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교만해지지 않도록, 노예들로 하여금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오늘은 개선장군이나 너도 언젠간 죽으니 겸손하라’는 메시지다. 인생의 덧없음과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어디있을까. 얀테의 법칙이 답을 알려준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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