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인본주의 교육의 극복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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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9 07:58  |  수정 2020-09-09 14:16  |  발행일 2019-09-09 제17면

장자 ‘지북유(知北遊)’편에는 동곽자(東郭子)라는 사람이 장자에게 도(道)가 어디 있냐고 묻는 이야기가 있다. 이에 장자는 도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고 말했다. 동곽자가 더 분명하게 말해달라고 하자 장자는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있다고 말하고, 동곽자가 어째서 그렇게 낮은 것에 있냐고 반문하자 이번에는 돌피나 피와 같은 식물에 있다고 하고, 동곽자가 어째서 점점 더 낮아지느냐고 하자 이번에는 기와나 벽돌과 같은 무생물에 있다고 말하고, 마침내 똥이나 오줌에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도는 모든 곳에 편만하여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여 이것이 저것보다 우월하다고 말한다. 이런 평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만물의 척도인 인간의 지각과 인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처한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본주의는 말 그대로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하면 흔히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떠올린다. 르네상스 인본주의가 신 중심의 중세사회를 극복하고 신 대신 인간을 그 중심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고 인간 이외의 존재는 모두 인간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르네상스 인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든 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들을 다스리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나, 유학에서 기(氣)로 구성된 모든 존재 중 인간이 가장 맑고, 밝고, 깨끗한 기로 구성되어 오상(五常)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한 것 역시 인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인본주의는 모든 교육의 바탕이자 기본 전제다. 근대교육을 포함한 근대문명은 인간의 존엄성과 천부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인본주의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본주의 교육은 인간 이성의 발현을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하층계급 사람들의 해방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본주의 교육은 인간을 모든 존재의 최정상에 놓음으로써 불가피하게 다른 생명이나 비생명의 억압과 희생을 초래했다. 즉 성차화된 타자로서의 여성, 인종화된 타자로서의 토착인, 자연화된 타자로서의 동식물과 환경을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고 착취하고 억압하였다.

인본주의의 극단적 형태는 최근 인공지능과 첨단과학의 발전에 따라 등장한 트랜스휴머니즘이다. 옥스퍼드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주도 아래 1998년 결성된 세계 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WTA)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응용이성을 통하여, 다시 말해서 노화를 제거하고 인간의 지적, 신체적, 심리적 능력을 대폭 향상시키는데 두루 이용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을 통하여 인간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가능성과 희망을 높여주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운동이다.’

트랜스휴머니즘에 이르러 인간은 마침내 생물학적 토대를 벗어나 영생을 누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인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인본주의에 기초한 특이점(singularity) 이후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 양극화와 환경의 파괴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SF 영화에서 보여주듯 철저히 파괴된 지구의 종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본주의 극복 교육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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