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일상의 행복

  • 이은경
  • |
  • 입력 2019-09-04 07:44  |  수정 2020-09-09 14:48  |  발행일 2019-09-04 제23면
[문화산책] 일상의 행복
이지영 <극단 한울림 연극배우>

우리가 밖을 나설 때 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친분은 전혀 없지만, 버스를 기다린다거나 지하철 출퇴근 시간이 같다거나, 혹은 동네 마실을 나온 어르신들이라거나 특별히 인사를 하진 않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조금은 아는 사람들이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려는 사람은 동네 근처를 아주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니는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이다. 항상 무표정하게 동네를 지나는 그 청년을 나는 관찰하는 시선으로 자주 봤더랬다.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내 동생이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장애를 다룬 연극을 오래해서 연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좀 더 정답을 생각해 내자면 그냥 내가 누군가를 관찰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버릇이 연극을 하면서 더 구체적이 된 것 같기도 한데, 여튼 별다른 특징없는 사람도 왠지 궁금해지면 유심히 보게 된다.

나보다 조금은 어려보이는 그 청년은 항상 무표정하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골목에서 마주칠 때도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간다. 한 번도 눈을 마주친 적 없고, 누군가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말을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그날도 낮에 길을 나서다 횡단보도 맞은편에 선 그 청년을 봤다.

‘오랜만이네’라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이나 만지려고 했는데…. 그 청년이 갑자기 손을 흔들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오잉 뭐지’ 주변을 둘러보니 내 뒤에 야쿠르트 아줌마가 계셨다. 아줌마는 크게 인사를 하진 않았지만, ‘그래’ 정도의 웃음이 섞인 짧은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이내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이 청년이 야쿠르트 아줌마와 아주 반갑게 인사하는 장면을 그리며 뒤를 돌아봤는데, 아는 체도 안하고 쌩하니 골목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내가 그리는 뭔가 흐뭇한 그림은 없었지만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집에 오는 내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아니, 좋았다는 것과는 좀 다른 오묘한 감정이 생겼다. 무심한 일상 속에 그 청년이 반갑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는 것이.

‘길을 나서는 재미가 저기에 있기도 하겠구나. 더운 한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진만 하던데 참 다행이다’하고 생각했다. 물론 일방적인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 청년은 즐거운 일들을 더 많이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청년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행복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지점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이지영 <극단 한울림 연극배우>

기자 이미지

이은경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