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는 대구에 산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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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3 07:57  |  수정 2020-09-09 14:48  |  발행일 2019-09-03 제25면
[문화산책] 나는 대구에 산다

옛 어른들 말씀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지금은, 강산은 모르겠으나 세상이 변하는데 10년이 아니라 1년도 걸리지 않는다. 내가 몸담고 있는 출판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더 빨리 변한다.

1987년, 날씨도 정치도 뜨겁던 6월29일에 첫 출근을 했다. 오늘까지 32년이 걸렸다. 그동안 잠시라도 다른 일을 직업으로 삼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세상일에 어둡다. 학보사 시절의 활판을 거쳐, 청타와 사진 식자의 시대를 지나 어느덧 모든 게 컴퓨터로 일하는 세월까지 왔다.

조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그래서 새 책을 기획하고 출간할 때마다 두렵다. 지금도 책을 출간할 때마다 기획부터 디자인, 종이 고르는 것까지 모든 게 두렵고 또 두렵다. 독자들이 보여줄 그 결과에.

학이사는 대구에 있다. 나는 이것이 참 좋다. 지역에 있는, 그것도 식구 다섯 명의 작은 출판사지만 늘 전국의 독자들과 함께하고자 한다. 학이사의 꿈은 ‘지역민과 함께 책으로 즐겁게 놀자’이다. 잘 놀다보면 세월은 즐겁게 흘러갈 것이고, 잘 놀다보면 넉넉지는 못하겠지만 호구지책은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그 생각으로 살다보니 어느덧 30년이 훌쩍 지났다. 좋은 사람들과 ‘학이사 독서아카데미’를 함께하고, ‘책 읽는 사람들’과 매달 만나 고전 속에서 유영한다. 또 전국의 지역출판사 책으로 서평대회를 열고, 책의 날에는 책 한 권과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만나 서로의 마음을 잇고, 좋은 날에는 시민들과 버스를 타고 문학기행을 가고, 완행열차를 타고 책을 읽으며 여행을 한다.

이렇게 책과 함께 놀 수 있는 것은 오직 학이사가 대구에 있기 때문이다. 이 즐거운 책놀이 중에 우리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멀리 팔공산에서 무료 서평강의를 하러 오는 문무학 시인이나 온종일 납으로 된 무거운 장갑을 끼고 점심시간도 없이 진료하는 백승희 사랑모아 통증의학과 원장의 책과 대구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씨나 거리를 탓하지 않고 오직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어 모이는 이들의 정성이 있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모든 게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출판도 사람을 상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 힘들 때도 많다. 그때는 지역 문화의 요체는 출판이다 또는 지역에 좋은 출판사 하나가 있다는 것은 좋은 언론사나 대학이 있는 것과 같다 라는 말에 위안을 삼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지역 출판사의 이야기를 적을 것이다. 타 업종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지역 출판사가 지역에서 하는 역할이 왜 소중한지, 왜 지역이 지역 출판사를 아껴야 하는지를. 그래서 우리 대구가 진정한 문화의 도시, 책의 도시가 되는 길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신중현 (도서출판 학이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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