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이스탄불의 눈, 아라 귈레르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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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02 08:18  |  수정 2020-09-09 14:49  |  발행일 2019-09-02 제24면
[문화산책] 이스탄불의 눈, 아라 귈레르
박연정<빛글 협동조합 대표>

취재와 섭외, 촬영구성안 쓰기, 편집내용 정리하기, 그리고 성우가 더빙할 내레이션 원고에 자막정리까지,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콩을 볶듯 바쁜 일상이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은 전시와 관련된 해외 출장 기간이다. 물론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다크서클을 발바닥까지 끌어내리며 밤을 지새워야 하지만 말이다. 20년 넘게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한 작업이 문화 프로그램 기획이기도 하거니와 우연히 전시 관련 번역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올해로 7년째, 전시기획팀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 헝가리, 스페인, 독일, 터키, 폴란드, 벨기에 등 돌아보면 참 많은 나라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그렇게 시작된 수많은 인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2014년 5월, 이스탄불의 한 카페에서 턱수염을 멋스럽게 기른 터키 할아버지와 만났다. 한국에서의 전시를 의논하기 위해 만난 그 할아버지는 ‘이스탄불의 눈’이라 불리는 사진가, 아라 귈레르였다. 터키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보다 더 유명하다는 노사진가, 사실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 ‘이스탄불’에서 글과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등장하는 흑백사진 역시 그의 작품들이다. 운 좋게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그의 개인 뮤지엄을 둘러보면서 ‘애칭이 왜 이스탄불의 눈일까’라는 어리석은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유럽과 아시아,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대륙에 발을 딛고 선 이스탄불은 거대한 노천박물관이다. 굵직굵직한 문명의 역사가 제각기 흔적을 남긴 이곳에선 오스만 황제의 토프카프 궁전이며 비잔틴 시대의 아야 소피아 등 수많은 유적들이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1950~70년대를 담은 아라 귈레르의 이스탄불 작업은 유적들 대신 서민들의 삶이 카메라를 가득 메운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오가는 고깃배 위의 어부, 낡은 전차가 다니는 거리의 노동자, 사진을 보다 보면 당시 이스탄불 서민들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에 끝없는 애정을 쏟아 부으며 순간을 기록한 그는 진정한 ‘이스탄불의 눈’이었다.

‘이스탄불의 눈’까지는 어림없지만 우리가 사는 대구에도 지역의 눈이 되려는 이들이 있다. 뜨거웠던 지난 8월, 방송작가들이 주축이 된 마을기업 ‘빛글’에서는 대구시 남구의 마을사진기록단을 모집했다. 20대에서 50대까지 열정 가득한 이들은 사진의 기본기를 배우는 수업 외에도 시장으로, 빈집으로, 벽화거리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골목을 헤집으며 공간과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이들 중 누군가, 아니 그 누구라도 ‘대구의 눈’이라 불리는 사진가가 탄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연정<빛글 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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