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토착왜구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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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3   |  발행일 2019-08-23 제23면   |  수정 2019-08-23

‘goddamn’은 우리말로 빌어먹을, 제기랄, 우라질 등으로 번역된다. 다 욕설에 가깝지만 느낌의 강도는 조금씩 다르다. 마찬가지로 궤멸과 괴멸, 폄하와 폄훼, ‘차였다’와 ‘까였다’ 역시 거의 같은 말인데도 어감은 살짝 온도차가 있다. 사전적 의미도 궤멸보다는 괴멸이, 폄하보단 폄훼의 뜻이 더 강하다. 격언·속담·잠언·금언·아포리즘도 유의어이긴 하나 어감과 낱말의 쓰임새는 저마다 다르다. 특히 속담은 민간에서 전해져오는 쉬운 격언을 말한다.

친일파와 토착왜구는 어떨까. 다 친일 성향의 한국인을 일컫는 데도 어감은 천양지차다. 토착왜구엔 일본 앞잡이라는 부정 의미가 진하게 배어 있다. 어떤 수식을 붙인들 친일파로는 토착왜구의 함의를 온전히 살릴 수 없을 게다.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우리나라 연안에 출몰해 약탈을 일삼던 일본 해적이다. 일본 해적 같은 한국인이란 뜻이니 여적(與敵)을 마다않는 골수 친일파를 낮잡아 이른 말이 분명하다.

토착왜구의 유래를 더듬어보려면 임진왜란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임란 때 왜군의 길잡이나 첩자 노릇을 한 한국인을 토착왜구의 원조로 봐야 하는 까닭이다. 당시엔 한국인 길잡이와 첩자를 ‘왜군을 따른다’는 뜻의 순왜(順倭)로 불렀다. 그 수가 적지 않아 선조가 “죄를 묻지 않을 테니 왜군의 굴레에서 벗어나라”는 칙령을 내릴 정도였다.

토왜(土倭)란 말이 언론에 등장한 건 100여년 전이다.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토왜천지’란 글에선 토왜를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로 묘사했다. 을사조약이 국권침탈의 강권임을 주장한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의 사설(1905년 11월20일자) ‘시일야방성대곡’에도 토왜를 질타하는 대목이 나온다. “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우리 조정의 대신이라는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두려움에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착근한 대한민국에서도 토착왜구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종군 위안부를 돈벌이 매춘으로 능멸한 전직 교수가 있는가 하면,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해야 할 아베 총리에게 되레 “사죄드린다”는 엄마부대 대표도 있으니 말이다. 400년 전 순왜, 100년 전의 토왜, 오늘날 토착왜구들의 행색과 내면은 어떻게 다를까.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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