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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디아스포라 (6부) ‘호주·뉴질랜드로 뻗어가는 대구경북인’ <6부> .5] 문동석 호주한인총연합회 초대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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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석윤기자
  •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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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생활 반세기…밤낮없이 일하며 18만 교포 대표로 우뚝

문동석씨가 본인 소유의 런던챔버 빌딩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반세기에 걸친 호주 이민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호주에는 현재 18만명이 넘는 한인 교포들이 살고 있다. 교포 수가 적지 않은 만큼 각종 단체와 모임도 많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공식적인 조직이 한인회다. 하지만 호주 한인회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시드니, 멜버른(빅토리아주), 브리즈번(퀸즈랜드주), 골드코스트, 캔버라 등 지역별로만 조직돼 있었다. 호주 한인회가 교포사회 전체의 통합된 목소리를 대변하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 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각 지역 한인회는 의기투합해 2017년에 호주한인총연합회를 출범시켰다. 초대 총회장에는 문동석 전 시드니 한인회장이 선출됐다. 그가 낙점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곳에서 산 기간만 반세기에 달하는 초창기 호주이민 사회의 산증인인데다, 한인회 활동에도 누구보다 앞장섰기 때문이다. 문씨는 지난달 호주한인총연합회장 2년 임기를 마치고 고문을 맡고 있다.

영천 수재…대구공고서 1등 다툼
‘삼성 모태’ 제일모직 1기로 입사
濠 멜버른서 주경야독 파견근무
현지인들 여유로운 삶에 매료돼
귀국後 31세때 가족과 이민 정착

섬유 수입업 뛰어들어 성장가도
지역 한인사회 봉사에 열성 다해
시드니 한인회관 마련 등 업적도
1세대 이민자 중 돋보이는 성공


◆대구공고 3학년때 제일모직 1기 입사

문동석씨는 1938년 영천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7남매 중 넷째였다. 어린시절부터 유복했다. 그가 살던 집은 방이 30개나 됐다. 영천에서 가장 큰 한옥집이었다. 부친은 정미소를 운영했다. 문씨는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공부도 영천국민학교에서 가장 잘해서 대구 경북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재들만 모였던 중학교였기에 그의 성적은 중간밖에 안됐다. 결국 경북고를 포기하고 대구공고를 택했다. 용 꼬리가 되기보다 뱀 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대구공고에서 전교 1~3등을 했으니 원하던 대로 된 셈이다.

문씨는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서 나중에 장군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뜻을 바꿨다. 고교 3학년 1학기 때 삼성그룹의 모태인 대구 제일모직공업<주>의 사원 1기로 입사한 것. 삼성에 들어오면 독일 유학을 보내준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게 가장 큰 지원 동기였다. 그는 제일모직에서 1년쯤 일하다가 자원 입대를 했다. 어차피 가야 할 군대이기에 빨리 다녀와서 자리를 잡고 싶어서였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이 호주와 인연을 맺게된 배경이 됐다.

◆이병철 회장 낙점으로 호주 파견근무

문씨는 제대 후 제일모직에 복귀했다. 마침 그때 회사에서 호주 파견 근무 희망자 신청을 받고 있어서 곧장 지원했다. 양복 재료인 양모를 호주에서 직접 수입해 원료가공 공장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는 섬유 국산화의 기치를 내걸고 제일모직을 설립한 고(故) 이병철 회장의 뜻이었다. 양복재료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회사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호주에서 그 일을 수행할 적임자를 뽑는 만큼 당시 사장이었던 이병철 회장이 직접 후보들의 면접을 봤다. 장소는 서울 반도호텔이었다.

“대략 10명쯤 면접을 본 거 같아. 내 차례가 돼서 면접장에 들어갔는데 가운데에 이병철 회장님이 앉아 있고, 그 옆으로 금성, 효성 부사장이 배석했지. 그리고 백운학 선생(관상가)도 있었고. 면접은 정말 간단했어요. 이 회장께서 내게 경상도 사투리로 ‘니 나이 몇살이고’라고 묻길래 ‘스무살입니더’라고 대답했죠. 잠시 후 이 회장께서 ‘됐다. 나가봐라’고 하신 게 다였어요. 그 말밖에 못들었으니 속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죠. 근데 어찌된 일인지 한달이 지난 후에 나 혼자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문씨는 이 회장이 학벌과 스펙이 좋은 사원이 아닌 자신을 낙점한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건 아마도 그의 관상이 좋았기 때문일 터. 잘 알려져 있듯, 이 회장은 사람을 쓸 때 관상을 가장 중시했기에 면접장에 관상가를 늘 앉혔다. “그날 면접에서도 관상가가 문 회장님을 뽑았을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그런가. 관상이 좋아서 안 굶어죽고 잘 사는 건가~”라며 껄껄 웃었다.

◆호주에 매료…주저없이 이민 떠나

문씨는 21세가 되던 1958년 1월에 호주로 파견 근무를 떠났다. 그의 멜버른 생활은 주경야독이었다. 낮에는 양모원료 수출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RMIT 멜버른 공과대학에서 양모에 관한 이론 공부를 했다. 또 주말에는 농장에서 양털 깎는 실습도 했다. 일과 공부에 매진했지만 그는 호주가 너무 좋았다. 현지인들의 여유롭고 풍족한 삶에 매료됐다. 특히 지인 소개로 알게된 지롱(멜버른 근처)의 한 농장에 놀러가서 알게 된 농장주 할머니가 유독 따뜻하게 맞아준 게 이민 결심을 더욱 굳힌 배경이 됐다. 나중에 그 할머니는 문씨의 이민을 가능케 한 결정적인 역할도 했다.

그는 2년간의 호주 파견근무를 마치고 제일모직 양모 원료 공장으로 복귀했다. 호주에서 수입한 양모 품질을 감정해 어떤 옷감으로 쓸지를 분류하는 일을 맡았다.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을 하고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호주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회사의 해외 유학 조건인 9년 복무 연한을 채우자마자 그는 꿈에 그리던 호주 이민을 결행했다. 1969년이었다. 당시는 백호주의가 심했던 터라 동양인이 이민 허가를 얻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나 문씨는 호주 정치권에도 인맥이 있던 지롱 농장의 그 할머니가 힘써준 덕에 초청이민 자격을 얻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도 그 할머니가 너무 잘해줬어요. 우리 애가 세명(1남2녀)인데, 그 할머니가 호주서 보내준 옷만 입고 자랐어요. 그리고 초청이민에 필요한 취업, 재정, 주택보증까지 다 해줬어요. 내 인생 최고의 은인이에요.”

◆사업·한인회 활동으로 보낸 50년

문씨는 시드니에 있던 ‘블랙 앤드 베어’라는 양모 수출 회사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8년간 근무한 뒤 1978년 섬유수입 업체를 차렸다. 회사명은 낮밤없이 일하겠다는 의미로 ‘선문(SUN MOON) 트레이닝’이라고 지었다. 회사는 번창했다. 그는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섬유에서부터 산업용 벨트와 호스공장, 건설업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종합상사를 운영했다. 회사가 성장가도를 달리던 1980년대, 해외 거래처가 주로 한국이었기에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수출 유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문씨는 한인사회 봉사에도 열성을 다했다. 이민생활 시작 2년 만인 1971년부터 시드니한인회 총무와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68년 출범한 초기 시드니한인회의 반석을 다지는 데 큰 힘을 보탠 것. 이후 문씨는 제15대 시드니한인회장(1985~1987)을 맡아 한인회관을 마련하는 등 업적을 남겼다. 이외에 한호상공인연합회 부회장, 호주 한인상공인연합회장, 민주평통호주협의회장 등을 역임한 뒤, 2017년 호주한인총연합회 초대 회장에 추대됐다. 호주 1세대 이민자 중에서 성공을 거둔 교포도 적지 않지만, 문씨가 이룬 부와 명예는 단연 돋보인다. 그의 자녀들도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큼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 “내가 아마 시드니에서 가장 오래 산 한국인일 거예요. 지난 50년 세월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뛰어나서라기보다 운이 좋아서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호주 한인사회의 거목(巨木)인 문씨는 조국을 향한 애정도 여전했다. 특히 청년실업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 대안으로 호주에서의 워킹 홀리데이를 강조했다. “얼마 전에 워킹 홀리데이 체류 가능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났어요. 무슨 일을 하든 여기서 3년을 비벼대다 보면 살 만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요? 도전정신과 열정이 넘치는 많은 한국청년들이 호주에서 성공의 꿈을 맘껏 키워보길 바랍니다.”
글=허석윤기자 hsyoon@yeongnam.com
 사진=이정화 작가 seajip00@naver.com

공동기획:인문사회연구소, fride GyeongBuk

※이 기사는 경북도 해외동포네트워크사업인 ‘세계시민으로 사는 경북인 2019-호주·뉴질랜드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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