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 이은경
  • |
  • 입력 2019-08-21 08:20  |  수정 2020-09-09 14:34  |  발행일 2019-08-21 제23면
20190821

최근 할리우드 영화계는 중국시장을 겨냥한 기획과 투자가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단순 자본투자를 넘어 14억 인구를 겨냥한 영화시장 위상 확대, 미국과 나란히 ‘G2’ 초강대국으로 영화 속에서 조명되는 국가 위상을 보면 ‘괄목상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메이드 인 차이나’ 표현처럼 중국을 쉽게 보던 인식은 위협으로 바뀐 지 오래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블록버스터 ‘월드워Z’는 원작에선 좀비 바이러스 근원이 중국이던 것이 영화판에선 한국 평택기지로 바뀌었고, 롤랜드 에머리히의 재난물 ‘2012’에선 지구 자전축 붕괴로 일어난 대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주’ 건조가 중국의 인력과 기술로 이뤄진다. 제임스 본드의 007 연작에도 중국 비밀정보원들의 활약은 감초처럼 자주 등장한다. ‘고질라’나 ‘퍼시픽 림’ 시리즈에서도 ‘지구방위대’ 미군의 조력자로 중국이 자리를 잡는다.

팽창일로인 중국영화계는 광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우리에겐 익숙한 할리우드 액션물의 공식을 차용한 자국산 블록버스터를 양산한다. 영화 ‘유랑지구’에선 으레 NASA가 맡아온 역할, 외계물체와의 충돌에서 지구를 구하는 역할을 중국이 떠맡는다. 테러와 분쟁에 맞서는 세계경찰로 ‘전랑’ 시리즈에선 중국 특수부대가 종횡무진 활약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서구 백인영웅의 자리를 중국인이 짝퉁 대체한 걸로 보이는 건 왜일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만 봐도 여성과 유색인종, 돌연변이 히어로들이 줄줄이 활약하는 중인데도.

지난 18일 장대비가 내리는 홍콩에서 100만명 이상의 시민이 흐르는 물처럼, ‘유수’ 시위를 평화적으로 이어나갔다. 중국 정부가 10분이면 홍콩으로 진입할 수 있다며 6천명의 무장경찰을 탱크와 장갑차에 태워 무력시위를 일삼는 바로 곁에서 말이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앞다투어 시위대가 서구세력과 밀통하고 경찰을 폭행한다며 ‘디스’하기 바쁘다. 한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의 중국인 멤버나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배우들도 SNS에 홍콩 경찰을 옹호하고 시위대를 규탄하는 ‘뻔한’ 게시물을 올리는 게 유행이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 실사영화 주연을 맡은 유역비의 ‘관변’ 포스팅은 영화 불매운동으로 번질 조짐이다.

2019년 정보초고속도로가 지구를 연결하는 시대에 국가권력이 강요하는 연예인들의 관제동원은 속된 말로 너무 ‘후지다’. 짧은 이익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행태를 현명해진 대중은 금방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중국, 그리고 일본의 근래 행보는 주변국과의 공존공영보다는 자신이 가진 힘을 주체할 줄 모르는 몸만 큰 아이의 투정에 가깝다. 존경받고 싶다면 힘 자랑이 아니라 올바르게 힘을 쓰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의 등식대로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김상목<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기자 이미지

이은경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